새로운 코드
남자들의 다리를 힘들게 하던 스키니핏의 시대가 가고 여유로운 루즈핏의 시대가 슬금슬금 도래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컨템포러리 남성 브랜드의 컬렉션에서 와이드한 핏의 팬츠와 어벙한 느낌의 크고 여유로운 상의가 스멀스멀 등장하더니 올해엔 대놓고 루즈핏이다. 그 여파는 현실적인 영역의 패션에도 도달해서, 와이드 슬렉스 팬츠나 통바지가 백화점 매장 한켠을 채우고 있고 거리에서도 심심찮게 포착되고 있다. 예상컨대 아마 올해가 끝나기 전에 루즈핏이 대세가 되고 남성들은 더욱 아방가르드해질 것이다.
사실 과거에도 루즈(loose)가 남성 패션의 키워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4년도다. 그때는 누구도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허벅지 통은 넓고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일명 '항아리핏'의 바지가 대세였다. 멋 좀 부린다 하는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복 바지를 수선했고, 노스페이스 가방끈을 최대한 늘려서 엉덩이에 매고 다녔다. 사복을 입는 소풍 날에는 아디다스 져지와 황토색 와이드 카고 팬츠, 거기에 비니 모자 하나면 그날의 패션왕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패션을 선도했던 반윤희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다시금 찾아올 루즈핏 코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남성 패션에 어떻게 적용될까. 그리고 남자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을 것인가.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불어닥칠 거대한 흐름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곧 트렌드가 될 루즈핏은 예전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일 거란 사실이다. 바라건대 남자들의 바지통만큼이나 생활과 사고도 여유로워질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