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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May 02. 2017

쇼루밍족에 관하여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전략


  요즈음 유통업계 최고의 화두는 '쇼루밍'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쇼루밍(Showrooming)이란 오프라인 매장(Showroom)에서 제품을 체험해보고 온라인으로 제품을 주문하는 새로운 쇼핑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확신한 다음 온라인으로 정상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전에 없던 합리적인 소비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쇼핑 패러다임의 출현에는 스마트폰과 온라인 쇼핑몰, 온라인 중개 업체와 같은 '기술적 요소'와 "다들 그렇게 쇼핑하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 있나"하는 '사회문화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있었던 반면 후자는 최근에 와서야 공고히 되었다.

  사실 쇼루밍이라는 말은 예전에 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최근에 와서야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것은 앞서 언급한 사회문화적 요소, 즉 (매장 점원에 대한)죄책감이 이제서야 완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는 '(냉철한)합리적 사고' 방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쇼루밍족의 합리적 소비 행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오프라인 매장이 제공하는 편의-점원의 호의, 상품의 진열, 직접 체험, 심지어 손님의 살듯말듯 밀당에 당해주는 것까지-는 실컷 누리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홀라당 해버리는 행태가 얌체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고 닦았음에도 너무 무딘 비판의 날이다. 양심은 법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가 사는 곳은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가 상정하는 합리적인 소비자에게 양심 운운하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결국 오프라인 매장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이다. 오프라인보다 싸게 상품을 공급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거나. 하지만 중간 유통과정이 더욱 많고 지대가 존재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상 첫 번째 옵션은 현실성이 없다.


  쇼루밍족의 소비 행태에 대응해 어떤 브랜드에서는 특정 제품을 오프라인으로만 유통시키기도 한다. 혹은 오직 오프라인에서 구매한 제품에 대해서만 A/S를 제공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전략이 아니라 꼼수에 가깝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기보다 피상적인 술수를 사용함으로써 상황의 일부분만을 타개하려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의 어떤 시대보다 현명해진 소비자들은 기업의 이러한 꼼수를 누구보다 잘 알아차린다. 기업은 괘씸함을 느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과 나쁜 후기를 감당해내야만 한다.

  따라서 오프라인 매장은 두 번째 옵션, 즉 온라인 매장이 줄 수 없는 차별화 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의 효용은 온-오프라인간 가격 차이보다 더 커야만 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소비자를 좀 더 심도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주말이면 집 앞에 있는 백화점에 방문하곤 한다. 꼭 사야할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재미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집매장을 자주 찾는 편인데, 브랜드와 상관 없이 내가 선호하는 취향의 제품들을 한 눈에 체험해볼 수 있다. 일일이 정보의 홍수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진주 찾기를 해야 할 필요가 없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이미지로만 보는 것과, 오감을 통해 실제로 체험하는 것 차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극대화시키는 요소가 바로 매장의 VMD이다. VMD란 Visual Merchandising 의 약자로, 브랜드 컨셉에 맞춰 매장 전체를 꾸미는 것이다. 제품의 배열, 마네킹의 착장, 소품의 진열, 매장의 향기, 음악 등 모든 감각적 요소를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게 꾸며 소비자가 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량적 데이터와 정성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져 같은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매장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를 살펴보는 것도 쇼퍼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큰 재미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제품만 모아놓고, DP도 잘해놓은 매장에 들러서 실컷 구경한 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장의 분위기에 심취하고 그 좋은 기분을 깨기 싫어서 바로 구매하게 된다. 아무리 빨라도 하루 이상은 걸리는 온라인 배송에 비해 오프라인 매장의 즉시 구매와 한 아름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기분은 어느 정도의 가격 차이를 납득하게 한다. 

  그렇다. '감동'이 바로 오프라인 매장이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차별화 된 가치다. 오프라인 매장은 고객을 위한 편의를 극대화하고 뼛속까지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인터넷 할인가를 떠올리지 않고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체계화된 직원 교육과 매장 관리, 트렌디한 MD와 VMD 등 많은 부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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