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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러치타임 Sep 07. 2021

휴일이 평일보다 잔혹한 이유

군청특강 잔혹사

충만이는 전도사에요. 이름보다 전도사로 더 많이 불려요. 그는 최근에 가ㅈ같은 교회에서 일을 하게 돼요. 이곳에도 21세기 골품제도가 있다는 것이 쓰라렸지만, 가장 낮은 육두품 출신이지만 열심히 해보기로 해요.     

 

   목사 양반은 많이 바빠요. 그의 철학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래요. 그는 꽤나 자신을 자랑해요. 목사, 교수, 부흥회 강사. 그래서 일주일 평균 5일은 그를 볼 수 없어요. 충만이가 보기에는 입만 잘 터는 것 같은데 왜들 그렇게 불러주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바로 쇼미더 머니를 뜨겁게 달궜던 ‘인맥 힙합’. 그것을 벤치마킹한 인맥 목회였나 봐요.      


   주중에는 집회를 돌아다니고. 토요일에는 미자립교회 전도집회를 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 교회가 제일 급한 것 같은데 안에서 새는 물보다 밖에서 들어오는 물이 더 중요한가 봐요.     


   한 번은 군청에서 특강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쥐 뿔 없는 양반이 피피티가 필요하니 인터넷에 떠다니는 다른 양반들의 것을 사정없이 긁어오래요. 개망신 한번 당해야 정신 차리려나 봐요. 충만 전도사는 닥치는 대로 불법 다운로드를 해요. 충만 전도사는 너무 좋아하는 목사 양반을 보며 한숨이 나와요.

     

   그런데 이 양반이 난데없이 월요일에 시간이 되냐고 물어요. 자기 강연 피피티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대요. 거기 직원이 하면 되지 않냐고 하니 꼭 충만 전도사가 와야 된데요. 근처에 맛집도 있으니 와이프랑 놀러 가는 셈 치고 오래요. 이게 무슨 ㅂㅅ같은 쌉소리인가요? 꾸욱 참고 아내에게 말해요. 아내가 찬성해주어 목사 양반에게 어쩔 수 없이 월요일을 내어줬어요.

     

   충만 전도사의 아내는 목사 양반 드린다며 커피라도 사가자고 해요. 2살 된 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그곳에 갔던 거예요. 군청 방송실에 올라오니 이미 다른 직원들이 스탠바이하고 있었어요. 안 와도 되었던 거예요.      


   그때 문자가 하나와요. “왔어?” 충만이는 답을 해요. “네” 그다음 답이 없어요. 충만 전도사는 안 해도 될 피피티 넘기러 여기까지 온 걸 생각하니 열이 받지만 꾹 참아요.   

    

   특강이 끝났어요. 가족과 함께 인사하러 갔는데, 아뿔싸! 목사 양반이 없어요. 전화를 해봐요. 받지 않아요. 한참을 기다리다 그냥 가기로 해요. 충만 전도사는 생각하면 할수록 안에 열이 받아요. 한참 뒤에 목사 양반한테 전화가 와요. 바빠서 먼저 가니, 알아서 가래요.      


   충만 전도사는 빡이 쳐요. 이 빡침을 온 맘 다해 꾹꾹 눌러 담아 말해요. “목사님! 제 아내가 목사님 드리려고 커피까지 사 왔는데, 그냥 가셨네요.” 한사코 말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뿌리치고 어금니를 깨물며 말한 것이에요.      


   목사 양반은 갑자기 당황하며, 밥이라도 사줄 것 그랬다며, 연신 미안해해요. 충만 전도사는 생각해요. “아니, 그럼 나 혼자 왔으면 밥도 안 사주고 그냥 가는 게 당연한 거야?” 밥?! 그까짓 거 안 먹어도 돼요. 근데 유일하게 쉬는 날 사람을 불러놓고, 수고했다는 한마디 없이 사라지는 인간이 그게 인간ㅅㄲ인가요? 굳이 군청 직원이 해도 될 일을 시키려고 공휴일에까지 불러내야 했을까요?      


   그거 하자고 88km를 달려온 사람, 아니 가족의 시간은 어떻게 보상하나요? 요즘 같으면 노동청에 신고라도 할 텐데.. 아뿔싸! 그런데 근로계약서가 없어요. 참. 그러고 보니 충만이는 자신은 육두품 전도사라는 것을 까먹었어요. 씁쓸해요. 돌아오는 길, 차까지 막혀요. 창밖을 보니 벌써 해가지고 있어요. 충만이는 ‘뭐 이런 ㄱ 같은 휴일이 있나’하며 한 숨을 쉬어요. 그렇게 휴일이 지나갔어요.      


   충만 전도사는 이 빡침을 묻어버리고 무사히 교회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오늘의 동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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