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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Oct 02. 2020

기술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

문제해결력과 성장촉진력

지구 상에서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알파'라고 부른다. 사회적 동물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고 불리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형태의 무리이든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서 리더가 탄생한다. 가정, 학교, 친구, 회사 등 어딜 가나 우리가 속해 있는 곳에서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그 무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솔자가 있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리더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도 자신이 속한 그룹 중 적어도 하나의 그룹에서 리더를 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든 과거든 아니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또는 소규모이든 대규모이든 말이다. 사람들은 리더란 자리는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리더는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리더를 잘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인간은 사회성이 극도로 발달한 동물이다. 우리 인간의 사회성은 포유류 시절부터 진화되어 왔다고 가정해도 2억 년에 걸쳐 단련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리더가 될 자질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태어난다. 우리는 딱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떤 리더가 이상적인 리더인지 그 사람의 지휘를 겪어 보면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어떤 경험에 대해 좋음과 나쁨을 직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은 바꿔 말하면 리더가 아닌 사람도 리더의 역할을 맡으면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는 리더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리더가 탄생하는 이유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축구경기를 할 때 골키퍼가 자신이 지키는 골대를 버리고 골을 넣으러 간다던지, RPG 게임을 할 때 탱커(방어 역할)가 딜(공격)을 넣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역할 놀이를 하는데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역할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너무 호들갑을 떠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더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기술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서론이 길었다. 서론을 길게 이야기 한 이유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 다루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리더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도 없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이끄는 모든 무리에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게 친목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말이다. 기술 조직은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 문제란 것은 돈을 버는 것 자체일 수도 있고, 사업을 지원하는 것 일수도 있고, 학술 적인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술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술 리더십(Technical Leadership)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리더십에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나는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1. 문제 해결에 기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2. 구성원들의 기술 성장판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로 문제 해결에 기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다른 그 어떤 특성보다 첫 번째 것이 되면 구성원들이 따르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문제 해결은 조직의 존재 목적이자 구성원들의 직업적인 목표 그 자체이다. 기술 리더는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기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 리더라고 해서 모든 종류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배경지식을 다 숙지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기술 리더라면 아래 3가지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기술 문제들에 대한 솔루션을 직접 제시
2. 기술 문제들에 대한 솔루션에 대한 메타 정보를 간접 제시
3. 1번도 2번도 아니면 막힌 문제에 대한 답답함을 공감하며 문제 풀이에 함께 참여


실질적인 기술 조력은 기술 조직에 몸담은 구성원들이 가장 바라는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들었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자신이 지금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소속 주니어 개발자가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 리더로서는 직무 태만이라고 보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 조직의 건강도를 체크하는 설문조사 항목이 있다면 꼭 저런 질문을 넣어서 확인해 보았으면 좋겠다.


첫 번째 요건에 굳이 '기술적인'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일반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도움은 협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주거나, 필요한 도구를 지원하거나, 스폰서십을 받는 등의 행위가 되겠다. 기술 리더라면 일반 리더의 역량에 도메인 특화 역량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기술자들을 휴먼 리소스 관점에서 관리만 하는 기술 리더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나의 직무 경험으로 도출해 낸 결론이다.


두 번째로는 구성원들의 기술 성장판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들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말하면 엔지니어들은 기술적 도태를 두려워한다. 엔지니어의 기술적 도태는 곧 생존의 위협을 뜻 하기도 한다. 어떤 분야나 학문이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듯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도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자연도태되기 십상이다. 그 어떤 생물도 도태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들의 성장에 대한 욕망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에서 보자면 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욕구가 아니라 생존에 관련된 하위 욕구에 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매슬로우 욕구 단계설이 이럴 때 쓰는 것은 아니지만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기술 성장판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관심 분야를 함께 연구할 수 있게 해 주던지, 업무 이외의 기술 활동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던지, 구성원 간 업무 중에 습득한 기술지식을 원만하게 교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던지 하는 방법이 있다. 세부적인 방법론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엔지니어들의 성장에 대한 열망을 공감하고 그것을 실현해주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 기술 리더의 몫이란 것이다.




처음에 이 글을 적을 때 '성공하는 기술 리더가 되려면'이라는 제목을 지을까 했었다. 하지만 나는 성공한 기술 리더가 아닌데 그런 제목을 짓는 것은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통해 고백하자면 나 자신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표본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들 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들은 늘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의 그러한 점 때문에 스스로 몇 번이나 무너질 뻔했지만, 그때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일어설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도와줬다는 사실을 잘 몰랐겠지만 나에게는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일어나서 꾸역꾸역 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지금껏 달려오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난관에서 벗어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술 리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 일반적인 리더와 기술 리더에 대해 길게 서술하긴 했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갖춘 인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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