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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Oct 01. 2020

쓰기와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실용적이지 못한 미덕은 악덕이 될 수 있다.

요즘의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에 TV에서 외국 학교의 수업환경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TV 속 수업의 진행 과정은 내가 자라오면서 겪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우선 모든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에 말할 기회를 갖는다. 선생님과 급우들 간에 다양한 방향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 학습의 평가는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생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게 하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었다. 내가 겪은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 수업 중 대부분의 시간은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에 따라 때로는 질문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 이기도 했다. 학습의 평가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위한 논술도 생각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기교를 익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20년 전을 뒤돌아보면 학교에 다닐 때 나는 수업시간에 말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보고 싶기도 했고, 다른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 이외에 수업시간에 말을 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하는 소위 말하는 '떠드는 행위'였을 뿐이다. 그 생태계를 잘 알기에 나는 항상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른 기발한 생각들을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입 밖에 꺼내곤 했다. 내게 떠오른 생각들을 주변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들이 웃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들은 호의적으로 받아쳐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도에 대한 반응은 냉랭했던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에 그렇게까지 공부에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은 아니었다. 공부를 해도 게임을 해도 그럭저럭 잘하는 정도였다. 재밌게도 내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시기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두각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나도 두각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는 걸 발굴해 준 사람들을 회사에서 많이 만났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말하고 쓰는 것이 장점이었던 것 같다. 발성이나 발음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글씨가 예쁘고 문장이 화려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잘 전달했던 것 같다.


나는 왜 학생 시절 동안 소수의 권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살았던 걸까? 우리나라 교육은 듣기와 읽기를 위주로 가르친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듣기와 읽기 능력은 누군가 정해놓은 대로, 시키는 대로 잘 따라주는 피지배층에게 요구되는 필수 능력이었다. 내가 받은 교육은 온통 독해 능력, 암기 능력, 듣기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교육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숙련된 피지배층이었던 걸까?


반면, TV에서 본 외국의 교육은 사뭇 달라 보였다. TV를 보고 나서 문득 유학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시절에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1년 동안 미국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교육경험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과목들이 최소 주 1회의 에세이(Essay)를 요구했고, 거의 대부분의 수업은 학생들의 질문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교육 진행 방식 때문에 처음 한 달은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한국말로도 A4 한 장을 채우는 게 힘든데, 영어로 적어야 한다니... 무척이나 곤욕스러웠다.


TV에서 본 외국의 교육도, 내가 겪은 미국의 대학교육도 쓰기와 말하기를 중요시 여겼다. 당연히 듣기와 읽기도 중요했다. 잘 쓸려면 많이 읽어야 했고, 잘 말하려면 잘 들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층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는데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항상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인이 바꾸거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글로 쓰기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동료들은 그것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어렵다기보다는 한국인의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와 1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직원들도 그런 것을 보면 내가 겪은 시절 이후의 교육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무능력도 쓰기와 말하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읽기와 듣기는 주어진 과제를 인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획과 소통이 필요하다. 기획과 소통은 대부분 쓰기와 말하기의 행위의 연속이다.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만 푸는데 길들여진 사람은 답이 없는 문제를 풀 때 쉽게 좌절한다. 누군가의 답은 외우는 것은 기가 막히게 하지만, 내가 새로운 답을 만드는 것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는 행위는 대단히 창발적이고 도전적인 일이다. 의외의 사람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나는 한국의 교육이 입력보다는 출력을 중요시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용적이지 못한 미덕은 악덕이 될 수도 있다.

다음 세대들은 항상 입이 열려있고, 손이 자유로운 영혼들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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