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 육아, 아이와의 데이트, 오붓한 시간
최근에 '독박 육아'란 표현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육아 세계에 입문한 후 처음으로 그 단어를 들었을 때는 홀로 육아를 하는 상황을 잘 반영하는 표현이라 생각해 기발하다고 느꼈다. 그 후로도 아내와는 농담처럼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오늘은 내가 독박 육아할 차례니까 자유를 즐겨"라고 서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최근에 아내에게 "우리 이제 독박 육아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독박'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가 화투 놀이에서 나온 벌칙을 표현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화투 놀이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박'이란 단어는 그 판에서 패배한 한 사람이 다른 패배한 사람들의 몫까지 점수나 돈을 물어줘야 하는 '벌칙' 같은 것이다.
나는 아이를 돌보는 행위를 벌칙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어른들이 힘든 것인데 왜 아이를 벌칙 같은 것에 비유하는 것인가? 홀로 아이를 보는 육아의 고충을 표현할 만한 좋은 말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제 육아의 고충을 굳이 따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성인이 된 후 적당한 시기가 지나면 주위에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의 삶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굳이 본인이 직접 겪지 않아도 육아의 힘듦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독박'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혼자 아기 본다', '전담 육아', '아기랑 둘이 데이트 중이다'라고 표현해도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고충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측하건대 사람들이 '독박 육아'란 말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전반적, 지속적으로 충실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육아 분담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면 정말 벌칙 같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에는 '독박 육아'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도 충분히 공감은 간다. 그럼에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내 딸도 언어 인지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에 "OO이 때문에 엄마 아빠가 옛날보다 멀어진 것 같기도 하고~"하는 농담을 했다가 그 날 하루 종일 그게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딸의 모습을 봐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딸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단어를 주의해야겠다. 아이와 둘이 남게 된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은 독박 육아네~'라고 했다가 나중에 아이가 독박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참담한 심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