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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Nov 06. 2021

개발 징크스

시연의 법칙

오늘은 개발을 하면서 자주 겪는 현상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매우 비과학적이고 가볍게 적는 글이니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재를 제공해주신 개발자 김효석 님께 감사드립니다.


동료 엔지니어들은 종종 "컴퓨터가 이상해"라고 이야기한다. 지나가면서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컴퓨터는 안 이상해요. 사람이 이상하죠"라며 받아치고는 한다. 나도 안다. 저런 말은 잘난 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잘난 척에 대한 대가는 이미 치르고 있다. 나도 같은 일을 겪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의도한 대로 프로그램이 동작하지 않으면 "컴퓨터가 이상하다"는 말이 이빨 뒤쪽까지 닿았다가 다시 들어가곤 한다. '아 이럴 땐 컴퓨터 탓을 해줘야 제맛인데'라며 잘난 척했던 나 자신을 후회하곤 한다.


사실 "컴퓨터가 이상해"라는 말은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개발자들은 작업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논리적 오류와 상황적 결함들을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컴퓨터 탓을 하는 시점은 보통 개발자 본인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여러 번의 웹 검색 그리고 환경 변수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럴 때 지나가던 사람이 봐주면 생각보다 문제의 해결이 금방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발자들의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징크스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개발자라면 혹시 이런 경험 없는가? 

1) 아무리 실행을 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누가 보는 순간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2) 나 혼자 실행해 볼 때는 항상 문제가 없다가, 누가 보는 순간 문제가 생기는 때 (시연의 법칙)

양자의 세계도 아닌데 관측하는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 같은 이 싸한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동료가 어떤 문제를 몇 시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다. 슬며시 다가와 같이 해결해볼까 하면서 옆에 앉았더니 거짓말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사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꼴로 경험하는 같다. 가끔은 내가 옆에 앉는 것이 너무 싫어서 갑자기 동료의 문제해결력이 수십 배 증폭하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들곤 한다. 하여튼 이럴 때 동료가 "덕분에 해결했어요"라는 말을 해주면 그 찝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되면 일단 옆에 누구를 앉혀서 보여줘라. 그가 관측하는 순간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는 기현상을 느껴볼 수 있다.


시연의 법칙은 누구나 자주 겪는 경험일 것이다. 꼭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동료들 사이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시연의 법칙이 발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연 산출물을 만드는데 들인 노력만큼을 투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연의 법칙에 대한 해결책들을 찾아보면 시연환경과 최대한 동일한 조건에서 많은 연습을 해보고, 시연 동영상도 찍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라는 이야기들이 많다. 사실 근데 좋은 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팁이 되려면 따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산출물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시연에 최적화되는 과정으로 만드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서라도 '진정한 시연의 맛'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기회가 왔을 때 특급으로 마무리해줘야 성취감도 큰 법이다.


계산하는 기계는 정확하다. 실수하는 건 사람이다. 실수하는 사람들의 개발 징크스들이 일터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그 또한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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