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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Choi Apr 21. 2023

내가 로스쿨에 가지 않은 이유

50대 후반 아빠의 기술사 도전기   

50대에도 9 to 9로 학원수업을 듣는 아빠

국가자격 종목별 검정현황(정보관리 기술사)

아부지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제 2의 진로를 모색하는 목적으로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게 아주 대단한게, 필기합격률만해도 전년도 기준으로 5%이고, 실기까지 포함하면 최종합격률은 더 낮아진다. 22년, 극악의 합격률을 본 아부지는 이게 맞나-하고 중간에 방황을 하셨으나, 다행히 다시 보양식 먹으며 마음을 다잡은 듯 하다. 나이들어선 잘 안마시던 막걸리 한병 사와서 드링킹했다는 이야길 듣고, 지난주 주말엔 남자친구랑 놀다가 박카스와 초콜릿을 사다가 드리기도 했다.ㅎㅎ


아부지는 토요일에 강남과 일요일에 수업이 있는 영등포의 학원을 고민하다, 결국 가까운 곳을 택했다. 두세달동안 진행되는 기본반 수업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9시까지 계속 강의가 계속된다고 한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동네 종로학원에서 10 to 10수업을 듣던 기억은 나는데... 그걸 아빠 나이에 하고 있다니 대단할 뿐. 그리고 처음에는 집에 컴퓨터랑 책상이랑 다 있는데 뭐하러 굳이 스터디카페를 가냐던 아빠는, 취준 중이던 동생을 따라 가보더니 집보다 낫다며 바로 이용권을 결제했다. ㅎㅎ

아빠의 정리 노트. 빠르게 많이 써야해서 글씨를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 7시쯤 나가면 학원가기 전 공부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유연근무제로 집에 6시를 전후해 도착하는 아부지는, 밥을 먹고 스터디카페에가서 공부하다 밤 11시-12시에 돌아오신다. 주말에는 일어나서 내가 침대에서 폰보며 뒹굴다 나가면 식탁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는데, 물어보면 아침 5시 반부터 앉아있었다고... 독서실에 같이 가본 동생도 아빠가 아주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며 인정의 엄지척을 날림! 아빠의 스터디카페 이야기도 재밌다. 스카에 아빠랑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아저씨가 있는데 그분이 맨날 주무신다는 이야기나, 요새는 중고생들 시험기간이다보니 손자뻘들이랑 같은 공간에 있으니 계면쩍다는 이야기 등등...ㅎㅎ


정신력과 집중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그러다 어제 저녁에 퇴근하고 이야길 나누는데, 아빠가 어제는 유독 공부가 안됐다고 한다. 이번주 일요일, 학원에서 정식 시험전 마지막 테스트가 있어 아빠는 수목금 휴가를 내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기하게도 나도 마침 어제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고 피곤하며, 몸이 찌뿌둥하고 아무것도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 얘길 하자, 아빠가 마치 자신이 아픈 곳을 정확하게 짚어 설명해주는 의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석사 논문쓰면서 로스쿨 갈 생각을 버렸다고...^^ 학부때는 미술사 대학원을 나온 후 로스쿨을 해외로 갈거라고 막연하게 말했었는데, 미술사 석사 논문을 쓰면서 이걸 확신했다. 논문을 쓸 때 어느날은 정말 미친듯이 졸리고 피곤하고, 집중이 안되고 하기 싫고, 딱히 또 다른걸 하고싶지도 않은 미치겠는 상태가 종종 오더라. 차라리 전시나 서울 밖 어딘가를 쏘다니거나 걷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논문쓰는 것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말이다.


그런데 로스쿨을 가려면 일단 LEET나 LSAT시험 준비를 해야하는데, 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 컨디션이 다를거고, 여차저차 붙고나서도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10대, 20대의 체력도 아닌, 30대 중후반의 나이로 매일매일 집중해야한다니.. 20대 후반 논문을 쓸 때도 컨디션 관리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30대 중후반에 로스쿨에 가면 체력관리하며 공부하는게 더 힘들게 뻔해서 갈 생각을 버렸다는 이야길 했다.


유명한 짤이 있다. "집중이 안될땐 하던 걸 그만두고 바깥에서 신나게 놀고오세요. 그리고 돌아오면 알게됩니다. 나는 망했다는 걸"... 보통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이처럼 한정된 시간 안에서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내야하는 상황인데. 내 생각에는 이게 체력이 부족하고, 계속 책상 앞에만 앉아있어서 오는 번아웃같다. 바빠도 운동을 꾸준히해야 막판에도 이런 기분을 컨트롤하며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보통 마음도 급하고 시간이 없다보니 운동은 언감생심이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다.


누군가는 시험을 빨리 붙으면 되지않냐고 할 수도 있다... 원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굉장히 이례적이긴 한데, 실제로 내 주변에는 로스쿨을 3-4개월 준비하고 합격한 친구들이 제법 있다. 참고로 이들 중 한명은 매년 금융 공기업 시험을 치는데, 이때마다 NCS는 1주일 전 유튜브로 강의를 몇 번 보고 들어가면 항상 붙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변시 합격률이 50%니 나쁘진 않아보이지만, 애초에 그렇게 시험머리, 특히 실전력이 좋지 않은 내가 수배의 노력을 하며, 작지만 소중한 연봉 4-5년치를 포기하기에는 내 관심사/적성도 아니고, 안정적인 월급을 위해 로스쿨에 진학하는 건 그렇게 합당해보이진 않았다.


무튼,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나이 핑계로 로스쿨 안간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열공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한달 뒤, 테스트 겸 기술사 시험을 아빠가 보는데 더 공부안해도 되게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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