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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Choi May 21. 2023

카카오톡 차단의 역사

오수영,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카카오톡 차단의 역사

인연이 끊긴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종종 멀어진 사람들과 재회하는 꿈을 꾸곤 한다. 어색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 다가가며 예전의 그 관계를 회복하는 꿈. 평소 주어진 역할과 새로운 관계들에 집중하며 망각하고 있던, 과거 내게 가장 소중했던, 큰 힘이 되었으나 내 부족으로 떠나간 사람들.


그들이 꿈에 나와 화해하고, 다시 나를 이루는 중요한 한 나무가지가 되는 꿈을 꾼 날에는, 일어나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이 슬퍼져 눈물이 핑 돌곤한다. 바쁜 삶의 속도에 잊고 살던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그렇게, 여전히 내게 아픔으로 멤돌고 있단 걸 확인하는 날이 있다.


내가 카카오톡 차단을 당했는지 어떻게 확인하는 지 아는가? 상대의 프로필을 봤을 때 송금하기 버튼이 있는지로 확인할 수 있다. 요새는 아예 프로필 숨기기 기능까지 있어서,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랬다. 나는 그들이 연락이 없는 동안 내가 차단당한 줄은 모르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걱정하며 지냈다. 카톡 프사가 없어서 무슨일이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던 나는 내가 차단당해서 프로필이 숨겨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뒷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읽은 오수영 작가님의 글이 사뭇 위로가 되었다.



오수영 작가님의 섬세하고도 독창적인 시선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디로부터 어딘가로 떠나는 중이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머물듯 스치거나 스치듯 머물며 서로를 거쳐 왔다. 지나간 당신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일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기억은 나를 자꾸만 머뭇거리게 한다. 오히려 기억보다 망각의 힘에 기댈 때 우리는 마치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리고 어딘가를 떠나려는 사람처럼 다시 한번 떠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p.12-13)


오수영 작가님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사람의 섬세함이 이렇게 신선하고도 공감가는 문장/표현으로 되살아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이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반복한다. 신기한 인연이다. 10년도 더 되었네. 신촌의 한 영어학원에서 자유롭게 참가하는 한 소모임 세션에서 만났던 분과의 인연이, 카톡을 바탕으로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항상 구매해서 보게되는 작가-독자의 연으로 이어졌다.


한동안 이직과 학업을 마무리하느라, 신간을 내신 건 알면서도 책을 주문해서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요새, 어느정도 회사에서 적응이 되고 제안서 작업이 계속되어 시간적 여유도 생겨 다시 운동도 하며 다채로운 미래를 그리는 삶에 복귀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사이 팔로업하지 못했던 오수영 작가님의 책을 팔로업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오수영 작가님의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을 읽었다. 첫 한두페이지부터 밑줄을 긋게 만드는 문장들을 마주했다. 그러다, 내가 내 손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는 문장을 읽었다. 그렇게 내 카카오톡 차단의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을 만나 오늘의 브런치를 쓴다. 한 책에서 1장만으로도 이렇게 나의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작가님에게는 있다.


나조차도 잊고 살던 어느 순간을 끌어오는 능력은 분명히 아무에게나 허락된 건 아닐거다. 작가님은 글을 쓰기 수 년전부터, 많은 책들을 필사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나처럼 오글거리는 생각 그자체를 표현하는게 아니라, 정제되면서도 섬세하게 개별 사건들을 각기 다른 표현으로 공감가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애도가 아닌, 망각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삶

작가님의 글처럼, 이제는 기억으로의 애도가 아닌, 망각을 통한 새로운 시작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왜냐면, 이제는 이들이 나의 삶 한 부분을 풍성하게 해주고 외로움에서 구해주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감사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하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하며 스쳐간 그 순간에 감사하고, 멀어져 각자의 삶을 걸어나가고 있는 현재를 인정하며, 더이상 안타까움으로 스스로를 슬프게 하려 하지 않아야겠다.


갑작스러운 연락이, 지금 그들에게 가닿으면 상처를 되새기고 불쾌함을 일으킬 것 같아 과거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놀랍게도 순간 순간 나는 내가 필요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그 후에 그들은 다시 떠나갔다는 반복적인 패턴을 깨달았다. 결국 자신의 삶의 속도와 방향성을 찾아가는과정에서 서로에게 맞닿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그게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는 걸 나는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다.


다시 만난다면, 정말 고맙고 부족한 나를 아껴주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안타까운 마음만큼,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을 더 따뜻한 마음으로 돌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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