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자맥질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배우,감독은 물론 스태프,관련 종사들의 꿈이 담겨있다.
나도 한 때는 꿈의 공장에 머무르고 싶었다.
천만 영화,초호화 캐스팅의 영화를 꿈꾼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천만 영화 한편 보다
적은 제작비이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백만,이백만명의 여러편을 꿈꿨다.
그런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꿈틀거리길 바랐다.
관객들이 2시간만이라도 웃음을 짓고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아껴주고 주변을 안아주는 생각을 해주는 영화를 바랐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세상 숨은 곳곳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바랐다. 이를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에 희망을 심고 싶었다.
나는 영화 관련 학과를 나오진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그랬다. 영화관련 과도 아닌데
왜 영화를 꿈꾸냐고.
그런데, 한국영화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빛나는 많은 감독들이 영화 관련 과를 나온 것은 아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
박찬욱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이준익 감독은 세종대 동양화과를 중퇴,
영화 건축학 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오기도 했다.
'전공'이라는 틀을 통해 영화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전공'이 아니기에 영화 속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기도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칠 때 그 감독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방에서 살면서 스스로 보잘것 없다고 느껴지며
가라앉기도 하면서도 영화와 가까워지기 위해
발버둥도 쳤다.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기도 하고,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여도 했고
영화제 봉사활동도 하고, 작은 공모전에서 1등도 했다.
영화사 대표님의 강의도 듣고
영화 관련 서포터즈도 물론 했었다.
영화 블로그도 꾸준히 했고
http://blog.naver.com/cmin4411
영화 관련 인턴도 잠깐 했었다.
영화관련 공모전에 1등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난 꿈의 공장의 문 앞에서,
근처에서 돌아서야 했다.
돌아서야 했지만
나 스스로 형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20대 초반에 포기를 했다면 더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난 후회하지 않고 자맥질을 끝까지 했던
내가 안쓰럽지만 기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