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7년
태어나서 지금까지 경상도와 부산에서 생활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 예측을 할 것이다. 무뚝뚝하고 말 수가 적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예측은 어느 정도 맞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그 예측은 적중한다.
아버지는 한 평생을 경상도에서 지내셨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도 적었고 가족여행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내가 학교에서 글짓기 상, 그림대회에 자그마한 상을 받았을 때도
학교에서 1등을 할때도,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 수가 적은 아버지를 억지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스무살 초반까지. 하지만 수긍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면서 말 수 없던 아버지의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다.
이유가 퍼즐처럼 한 조각 모여들며 그 윤곽이 보였다.
아버지의 아버지, 형제들을 알아가며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스무살 후반에 들어설 때였다.
많이 힘들었을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위로를 해야할지
버거웠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별거 아닐지 모르는 한 마디, 표현이 낯설고 어려웠다.
조금은 이해한다는 표현, 고맙다는 표현, 미안하다는 표현을 아버지에게
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고향에 없는 도넛 브랜드의 도넛을 한 번 가지고 내려간 적이 있다.
이틀도 안되는 사이 한 통을 아버지 혼자서 다 드셨다.
이후로 고향에 내려갈 때 마다 그 도넛을 되도록 사들고 간다.
도넛의 달콤함으로 아버지의 팍팍한 현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랬고,,
그 달콤함으로 아버지가 피로가 풀렸으면 했고
조금 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랐다.
무뚝뚝한 20대 경상도 아들인 나의
아버지를 향한 표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