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바싹 다가선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로 비로소 실감하게 된 정년퇴직

by 오늘도 맑음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창립된 지 십 년이 넘으며, 매년 한두 명씩 퇴직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직이 아닌, 자의가 아닌, 회사 규정에 의하여 일정 연령이 됨에 따라 회사를 나가야 하는 '정년퇴직'으로 인한 퇴직자였다.


내가 처음으로 정년퇴직이란 것과 맞닥뜨렸을 때는 내 나이 사십 대 후반이 훌쩍 넘었을 때였다. 그때 나에게 정년퇴직은 남의 일처럼 여겼었다. 그 해 정년퇴직한 분과는 같이 근무해 본 적도 없고, 나이 차도 많이 나고 나와 성향도 다른 중년 남자였으니 나에게는 그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근무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정년퇴직자에게 이렇게 무심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정년퇴직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부재했던 당시 회사의 분위기도 한몫했던 것 같다.


몇 년이 흐른 후, 나와 지근거리에서 근무하던 두 사람이 연달아 정년퇴직을 했다. 한 분은 나와 오랫동안 같은 팀 혹은 바로 옆 팀에서 근무했던 상사분이었는데, 그에게는 아줌마스러운 성향이 있어서 여자 직원들과 수다 떠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었다. 그와 수다를 떨 던 사람 중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었다. 그는 퇴직한 후에는 평생학습관에서 베이커리며, 전기, 목공 기술을 배웠고, 지방에서 귀농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주중에는 농사를 짓고 주말에는 집에 올라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렸다. 그 분과 친하던 여자 상사분 역시 이듬해 퇴직했는데, 그녀는 퇴직을 앞둔 해 여름부터 수도권 어딘가에 있는 그녀 일가 소유의 땅에 농사를 지으러 다니곤 했다. 두 분의 상사를 보면서도 역시나 정년퇴직은 나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렀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정년퇴직'이라는 네 글자는 나의 옆에 바싹 다가서있었다. 내가 정년퇴직을 체감한 계기는 '임금피크제' 때문이었다. 일정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정년까지 임금을 삭감하고 그 돈으로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게 애초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취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내게 '정년퇴직'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었다.


사측은 내게 3년에 걸친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 동안 급여를 얼마나 차감할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해주지 않았다. 물론 내가 물어봤으면 급여 담당자는 귀찮아하면서도 성심껏 답변은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는, 그래서 깎인 급여만큼 '임금피크제 연차'가 주어진다는, 그 임금피크제 연차는 꼭 다 사용해야 한다"는 (피고용인이 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임금피크제 연차만큼 돈으로 보상해 달라고 하면 사측에서는 돈으로 보상해 줄 수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일방적인 설명을 담은 사내 메일이 내게 날아왔을 뿐이었다. 그 메일을 읽으며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정년퇴직에 대해 전혀 프렌들리 하지 않은 회사의 분위기를 새삼 실감했다.



(사진출처 :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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