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내가 가끔 들락거리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작년 연말쯤 우연히 발견한 카페인데, 알고 보니 난 이미 카페에 가입되어 있었다. 어떤 목적으로 이 곳에 가입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떤 필요에 의하여 이 카페를 다시 찾았나 보다. 카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저신의 역할에 맞게 드라마 교육원의 교육생 모집 시기에는 드라마 작가들의 고민이,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결과가 발표되는 연말연시에는 신춘문예에 관한 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온갖 글쓰기 강좌 홍보도 적당히 섞여 있었다.
카페에는 글이 안 써진다는 고민과, 경제활동과 글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주를 이루었다. 글에 집중하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직장을 다니며 직장과 글쓰기를 병행해야 할지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와 같은 고민, 글을 쓸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달알바를 하다 보니 몸이 힘들어 오히려 글을 쓸 시간이 없거나 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고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등단하고 경제적 안정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생업에 종사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의 진솔한 고민 이야기는 나의 나태해진 생활을 돌아보는 자극이 되곤 했다.
일찍이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김효연 작가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또 씁니다>,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일기>를 읽어본 나로서는 작가가 어지간한 명성을 얻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 경제적 위험이 작가의 창작활동을 얼마나 깎아먹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하기에 카페 회원들의 경제활동과 작가활동의 양립에 대한 고민이 공감 있게 다가왔다.
지난 토요일도 그런 날이었다. 자려고 누워 버릇처럼 핸드폰을 앱을 열고는 이런저런 내가 가입한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어보고 있던 중이었다. 연초답게 기대했던 신춘문예 결과에 실망한 사연, 오펜 공모전을 준비하며 힘든 생활을 토로하는 사연 사이에서 주옥같은 글을 발견했다.
글쓴이는 사십 대의 중견작가였다. 이십 대에 등단해서 시, 소설, 웹소설, 게임 시나리오까지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했고, 지금은 데뷔 이십 년이 넘어가지만 처음 데뷔할 때와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고, 한 가정의 외벌이 가장으로서 어찌어찌 생활비는 벌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투잡, 쓰리잡도 뛴다고 했다.
자신은 데뷔부터 주목받던 작가는 아니었다고 했다. 첫 작품이 실패하고 원고 청탁도 끊겼지만 끊임없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썼다고 했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쉬다가 썼고, 잠시 회사생활하다 그만두고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이 데뷔할 때 주위에 천재소리 들으며 데뷔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며 살다보니 한때 천재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다고 했다.
자신은 이런 생활이 지쳐서 글쓰기를 그만두더라도, 아마 일 년도 되지 않아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쉬지 않고 계속 쓰는 것. 그것이 작가의 숙명이고 작가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유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지금의 노력이 십 년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면 적립이 되어 자신의 자양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공모에 떨어졌다고 해도 비관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답답해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글을 쓰러 가면 된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 젊은 날 중요했다고 생각했던 지위, 명예, 인정, 친구, 인맥, 사회적 시선은 다 부질없어지니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글 쓰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했다.
진솔하고 핵심을 찌르는 이 글이 주는 울림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비단 글뿐이랴.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고 지속하는 것 모두가 귀중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은 비록 현실이 힘들다 하더라도 자신이 진정 그 일을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간다면 언젠가는 그 노력이 보답을 할 것이라 믿는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맞는 것일까. 그 지난한 과정을 나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도 글쓴이처럼 오직 나 자신만 보고 내 길을 갈 수 있을까. 늘 불안하고, 흔들리고, 확신이 없어 의심하던 나의 길이었다. 나도 이제 나 자신만 바라보고 꿋꿋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