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해야 할 일중 제일 우선순위를 주로 오전 시간에 끝내려고 한다.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정오까지이다. 그 시간대에는 글을 쓰기도 좋고, 운동하거나 산책하기도, 마트나 백화점에 가기 좋다. 물론 도서관에 가기에도 좋다.
그 시간대에는 어디에 있든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와 한가로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책상에 앉아도 집중이 잘 되고,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고, 거리에도, 마트에도, 백화점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유롭게 구경하고 고를 수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연차를 냈기에 오늘 하루만은 늦잠을 자자, 싶어서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들었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을 때는 여덟 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어제 운동을 못 갔으니 오늘 오전에 운동을 가볼까? 며칠째 도서관에서 책 반납일이 지났다고 문자가 오는데 오늘 책 반납부터 해야겠구나. 그러면 제일 먼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운동을 가면 되겠네. 운동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야겠다. 마트도 들러서 호박과 부추를 사야지.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렸다. 다행히 집에서부터 지하철 한정거장 좀 못되게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필라테스 센터를, 서점을, 마트를 차례로 들르면 거진 집에 가까워진다.
핸드폰 앱으로 아홉 시 반 수업을 예약하고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이 아홉 시 십 이분. 아홉 시에 집을 나섰으니 십분 조금 더 걸려서 도서관에 도착한 셈이다. 도서관을 나와 필레테스 센터로 향했다.
차가운 공기, 널찍한 팔 차선 도로, 인도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건물. 드문드문 걸어가는 사람이 눈의 뜨이는 한적한 거리. 일렬로 늘어서 있는 앙상한 나무. 구석구석에 채 녹지 않은 채로 쌓인 눈의 흔적.
모든 것이 한가롭고 느긋해 보였다. 더불어 내 마음도 여유로웠다.
아침시간에 필라테스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잠에서 덜 깬 근육에 자극을 줌으로써 하루를 잘 보낼 준비운동처럼 여겨졌고, 저녁 수업보다 수강생도 적어서 집중도 잘 되었다. 아침 수강생들은 운동시간에 겨우 도착하고, 운동 후에 종종걸음을 치며 센터를 나서는 저녁 수강생들보다 여유 있어 보였다.
리포머에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오른쪽 다리는 옆에로 뻗은 채 구령에 맞추어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허벅지 안 쪽 근육이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운동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짧은 순간의 행복감이 오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에 단 몇 분의 행복 덕분에 힘든 매일매일을 견디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저트를 한 입 먹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그 달달함이, 운동할 때 고통과 수반하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개운함이, 필수품은 아니지만 부담 없는 가격에 구매한 소소한 물건들이 주는 위로가, 천진난만한 내 아이의 웃음이 우리를 힘든 현실 속에서도 하루하루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아닌지.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어나 서둘러 출근하던 매일매일 속에서, 연차를 낸 오늘은 평소와 다른 느긋한 아침시간을 보냈고, 나의 의지대로 일정을 짰고 하루를 보냈다. 오늘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가득찬 안락함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는 힘이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