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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Mar 13. 2021

덴마크 회사에서 받은 4번째 오퍼

컨츄리 매니저 제안을 받았다.

덴마크에 온지도 어느덧 만 5개월,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고? 내가 그동안 한 게 있다면 열심히 먹고 열정을 다해 걷고 운동한 것. 집밥의 달인이 될 정도였으니, 아예 요리 쪽으로 커리어를 바꿔볼까 고민도 했다. 직접 레스토랑을 내볼까 찾아보기도 했고 코로나로 봉쇄된 덴마크에서, 아니 유럽에서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으로 망설였다. 동시에 내 사업을 해볼까도 고민했고 찾아보다 유통에 너무 문외한이라 그것도 미뤄두었다. 다시 마케터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내 경력은 결국 단절인 걸까?라는 고민도 했고 그러다 덴마크에서 다시 학교를 가볼까? 생각도 했을 만큼 정말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지난 시간들이다. 그래도 하루하루 정말 넘치게 살았다. 그동안의 근황은 대략 우울함과 즐거움으로 공존했다. 덴마크의 유유자적한 이 환경에 취해있다가 지루함을 느꼈고 치열한 한국과 아시아가 그리웠다. 회사에 가는 남편이 부러움과 동시에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나도 남편처럼 개발자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처음에 덴마크에 온 지 한 달 차 되었을 때 정말 운으로 첫 번째 인터뷰를 보고 오퍼를 받았다. 그때는 아직 비자도 신청하기 전이었고 혼인신고도 전이었다. 나름 꽤 큰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였는데 본사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고, 노르웨이와 핀란드, 영국 런던 그리고 덴마크 코펜하겐 등 여러 곳에 오피스가 있던 곳이었다. 당연히 1순위는 덴마크 코펜하겐이었고 2순위는 영국 런던이었다. (원래 내 꿈은 영국 런던에서 근무해보는 것이었으니까) 근데 마지막 인터뷰 후, 오퍼가 '스웨덴 스톡홀름' 본사였다. 물론 스웨덴 내 비자를 내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덴마크에 온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또 나라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더 이상의 장거리 연애 아니 주말부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스웨덴을 정말 싫어한다. 즉 옮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또 기회가 있겠거니 하고 정중히 거절을 하고 나중에 코펜하겐 지사에 자리가 나면 또 지원해달라는 말을 전달받았다. 이 포지션은 '퍼포먼스 마케팅'이었고, 사실 나는 광고 에이전시는 끌리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과감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그 후에는 또 다른 행운으로 헤드헌터에게 먼저 연락이 와서 세 차례 인터뷰를 보았다. Saas (Software as a Service) 스타트업이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 앞에 있는 회사였고, 링크드인으로 확인해보니 다들 엔지니어에 최소 15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사실 이곳은 나 스스로가 자신도 없었고 흥미가 없었다. 총 세 차례 면접은 잘 끝났고 연봉협상까지 하게 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서비스가 아님과 동시에 내 비자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어쨌든 물러야 하는 기회였다.


그렇게 두 번의 운이 준 기회를 지나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덴마크 내 혹은 유럽 내 여러 곳 관심 있는 스타트업들에 지원을 했지만, 대부분 연락이 없거나 서류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빈번했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마케터로서 이제 끝인가?
아니 것보다 나는 마케팅을 앞으로 하고 싶은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태 경력이 마케팅이기에 마케팅 분야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더욱더 헤매는 시간이었고 뭔가를 꼭 이뤄야만 할 것만 같은 부담감으로 몇 달을 보냈다. 당연히 생각 없이 또는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니까 탈락하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쑤셔가며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내가 멍청한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았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과 명상을 하기 시작하며 일단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번 연도에 이루고 싶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마케팅 3년 하고 1개월 이외에, 나는 영어 강사였고 주방에서 1년 간 보조를 했던 보조셰프 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8년 전 한국에서 혹시나 몰라 수료했던 한국어교원 수료증이 있었는데, 그게 빛을 주었다. 코펜하겐 방과 후 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를 모집하길래 인터뷰를 보았다. 갑작스러운 모의 강의 요청으로 밤새 강의 준비를 하고 인터뷰를 보았고, 좋게 봐주신 선생님께서 함께 근무하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세 번째 오퍼도 나는 결국 떠나보내고야 말았는데, 그건 바로 비자였다. 3개월이면 나온다던 나의 비자는 코로나로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취업에 성공해도 어쨌든 비자 없이 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회를 세 번이나 놓치고 나니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고 그 와중에도 간간히 프리랜서로 작업을 했다. 한 중국 대기업에 소속되어 단기로 계약하여 프리랜서로 카피라이팅과 QA 업무를 했었지만 홀로 집에서 일하는 게 재미가 없었고 덴마크에서 한 번쯤은 근무해보고 싶은 욕구를 채워줄 수 없어서 두 달쯤 되기 전 일을 끝 맞추고 온라인으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즉 내 신분은,


1. 주부

2. 학생

3. 취준생

4. 프리랜서

(퍼스널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잠깐 단기 통역도 했고, 업체와 한국 시장 진출을 돕는 일을 간간히 했다)


아무쪼록, 백수 같지만 열심히 바쁘게 살아갔다.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도 그 어렵다는 덴마크 내 취업, 나는 다시 한번 전략을 바꾸었다. *덴마크에서 취업이 어렵다는 것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타 유러피안들, 즉 정말 많은 외국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인데, 결국 인터뷰를 몇 번 보았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엄청난 성과다.


1. 나는 그래서 뭘 하고 싶은가를 더 좁혀야 했다.


만약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잘할 수 있는 것 또는 죽어도 하기 싫은 것을 제외한 것을 하기로 했다. 깊게 오래 생각 끝에 나온 결정은, 나는 '주어진 일에 정말 최선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꼭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나는 어디서든 내게 무언가가 주어지면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공략하기로 했다. 결론은 어쨌든 모든 일은 마케팅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무엇을 하든 간에 마케팅은 떼어놀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2. 마케팅, 이 광범위한 마케팅


내가 지난 3년 간 했던 마케팅은 '앱' 마케팅이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팔고(홍보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의 커리어에 있어 이커머스 분야(소비재)를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전혀 다른 분야를 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함께 도전해보기로 했다.


3. 그래서 어떻게 취업할 건데?


코로나 시대, 특히 타격이 큰 이 작은 땅 덴마크. 아니 더 좁게 코펜하겐에서 나는 어떻게 경쟁을 할 것인가? 대부분이 석사과정을 마친 고학력자들에, 덴마크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을 상대해야 하는데 나는 전략을 세워야 했다. 덴마크인들이 또는 이곳에서 취업하는 이들은 대체 어떻게 취업을 하는지, 그 엄청 다르다는 덴마크식 이력서는 어떻게 작성하는 건지 등을 추적하고 알아갔다.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졌다. 무급 인턴부터 시작해도 좋으니 배울 수 있게 그 시장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천천히 성장하면 되니까.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드는 곳들을 추렸고 내가 세운 전략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이렇게 마음먹기까지가 너무 힘들었던 것은 내가 이미 경력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더 많은 경력이 있었더라면, 내려놓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좌절하고 말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 시장, 경력을 쌓으려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지원한 관심 있던 회사 두 곳에서 인터뷰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어제 면접을 본 한 곳은 원래 그들이 찾던 롤은 주니어 마케터 또는 무급 인턴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쪽이 가고 싶으니 나는 무급이라도 좋으니 덴마크인들과 즉 백인 세상에서 아시아인으로 함께 일을 해보자는 것으로 목적을 두었고 어제 면접을 참 재미있게 보았다. 참고로 덴마크 면접 방식은 한국과 정말 다르다. (면접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브런치에 공유할 예정)


그리고 어젯밤 바로 연락이 왔다. 바로 4번째 오퍼. 주니어 마케터가 아닌, 무급 인턴도 아닌 '컨츄리 매니저'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한국 시장을 확장하고 싶은데 함께 시작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무쪼록 덴마크에서 네 번째의 오퍼를 받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당연히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내게 남은 숙제는 또 이놈의 비자다. 다시 월요일에 오퍼를 준 회사와 의논하여 기다려줄 수 있는지와 조정이 가능한지를 상의할 예정이다. 물론 놓치면 나는 또 너무 배가 아프고 속상할 테지만, 덴마크에서도 나의 취업 전략이 다시 한번 통했다는 것에 나는 의의를 두기로 했다. 아차 그리고 감사하게 다음 주 월요일 또 다른 회사와 인터뷰가 잡혔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곳과의 인터뷰도 너무나 자신이 있다. 인터뷰에 애초 자신감이 높은 나는 왠지 잘될 것만 같다.


아무튼 이 글의 결론은, 오랜만에 올리는 나의 커리어 근황과 결국 세계 어디를 가던 나만의 전략을 잘 구축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못해서 하지 않는 게 아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5개월 만에 보았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이 놓였달까. 만약 이 기회를 비자의 부재로 또 놓친다면 또 기회가 오겠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걷겠지 하며. (하지만 나의 마케터 살이는 덴마크에서도 아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마케팅은 어떤 사업이던 서비스에서든 절대 분리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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