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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Sep 03. 2021

고졸, 대학 중퇴자 타이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결핍'을 삶의 원동력으로 만들고 있었다.

9월 1일은 내게도, 내 친구들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나와 남편 모두 첫 회사를 같은 날인 9월 1일에 입사했고, 5년 뒤, 즉 이틀 전인 9월 1일 나는 호주 회사에 입사를 했다. 같은 날 덴마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오랜 인도인 친구도 3년 만에 또 다른 덴마크 회사로 첫 이직을 했고 , 또 다른 가까운 친구는 석사 시작 첫날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특별한 날인 만큼 셋이 9월 1일과 2일이 어땠는지 공유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설레고 긴장되고 불안하고 그런 모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입사 확정을 거의 한 달반 전에 알고 있었기에 딱히 설레거나 긴장되지 않았는데 전 날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나누다 두 명의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진짜 현명한(똑똑한) 선택을 한 거야" 한 친구가 말하자, 그 뒤를 이어 한 친구가 덧붙여 학위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넌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공부를 더 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두 친구 모두 석사 과정을 끝냈거나, 석사 과정을 시작한 흔히 말하는 고학력자들임에 반해 나는 나 스스로가 달고 다니는 타이틀인 '고졸, 대학 중퇴자'이다.

이 사실에 대해 예나 지금이나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나는 좀 느린 아이라, 그때는 공부를 하는 법도,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서. 그 당시 학교를 다닐 돈이 없었어서. 그리고 불안감도 늘 찾아온다. 나의 타이틀이 더 이상 고졸, 대학 중퇴자가 아닌 나의 실력과 경력으로만 비추어지기를 늘 바라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한창 나의 대한 인터뷰 요청이 올 때 늘 포커스는 ‘고졸, 대학 중퇴자’에 맞춰져 있었고 나 스스로도 이것에 대해 조금씩 신물이 났다. 물론 나의 이야기로 희망을 얻고 도전을 한다는 사람들의 연락도 받았으며, 가끔은 질책도 받았다. 그냥 철없던 애가 이제야 철 나서 열심히 사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고 사실 말이라 이제는 그냥 웃으며 수긍도 한다.


아무쪼록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XX 스타트업의 마케터가 아닌 '나'라는 존재로 돌아온 지 1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덴마크 회사와 계약서 사인 전 어긋나기도 했고, 덴마크에서 일하는 환상을 깨버린 정말 거지 같은 몰상식한 회사도 만났었으며 이곳저곳 기웃도 거리고 방황했던 시간을 거쳐, 싱가포르에 지인이 시작한 창업 멤버로 합류하기도 했으며 생각지도 못한 외국계 대기업의 마지막 관문 문턱까지 가봤으며 지인의 추천으로 드디어 호주에 본사를 둔, 동남아시아 지사와 근무를 하게 되었다. 덴마크에 살면서 참 여러 나라와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혼자 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고통도 뼈저리게 느낀 지난 11개월이었던 것 같다. 나의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 갈 때쯤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고 노력했던 것들은 바로 내려놓는 것이었다.


"덜 열심히 살자. 덜 치열하게. 그만 증명하자. 나는 이미 충분히 증명했으니까"


피곤했다. 사는 게. 누군가에게 그리고 사회에 내가 여기 있어요, 내가 그렇게 못나진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지쳐있었고 덴마크에 살면서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마음이 몹시나 여유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소중하고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되새기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 불안은 평생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게 그 불안감이, 초조함이 어디서 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결과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학력'이라는 부분이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좋은 학교를 못 간 것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남보다 덜 배웠다는 생각에 나는 늘 임포스터 신드롬을 앓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공부를 정말 많이 한다. 책을 읽는 공부가 아니라 여러 잡다한 지식들을 내 방식대로 소화한다.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또는 회사라는 조직에 속하여 배우려고 노력하고 늘 뭔가 생각하고 내 것으로 만드려고 하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덴마크에 와보니, 덴마크는 한국보다 더 많은 고학력자들이 존재했다. 석사까지는 왠지 당연한 것 같은 분위기에 취업을 할 때도 덴마크 내 석사가 있어야 유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두 친구 모두 같은 이유로 석사를 진학했다. (물론 이공계는 다르다.) 이런 결핍이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 채 태도를 다르게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지, 세상만사 뭐가 중요해?라는 말을 블로그에 쓰고 바로 또 다른 나로 빙의하기 시작했다. "나를 증명해야 해!"라고 속으로 외쳤다. 학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일하며 배운 것들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었고 그 욕구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특히 더 이상 신입이 아니라 경력자로서 해내야 할 할당량은 다르기에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추천한 지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 전 첫 온보딩을 마치자마자 내게 미션이 떨어졌다. 회사에 없는 시스템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하는 솔루션을 3일 차, 즉 오늘 건의하고 발표를 해야 하는 것. 별 큰 미팅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회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몸 담그고 있던 분야가 아니라 겁이 났다.


"나 이러다가 잘리는 거 아니야? 내 능력 너무 부족한 거 아니야?"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고 하루 종일 어떻게 해야 이 문제 해결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데이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리핀에 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이전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현 상황과 내가 생각하는 바를 공유했고, 놀랍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하길래 나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조금 웃기지만 만들어놓은 포맷과 문제점을 스크립트로 만들어 연습까지 했다. 아무래도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소통해야 하다 보니 더욱더 긴장을 했던 것 같은데, 영어는 10년을 넘게 써먹어도 어려운 것 같다. 아무쪼록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미팅 후 나를 추천했던 지인이자 상사가 "잘했어. 아주 칭찬해!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주어서 더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남아 있던 온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혹시 이 정도면 내가 스스로를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가끔 친구들은 내게 그렇게까지 불안하고 결핍이 있으면 차라리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어떻겠냐라는 말을 한다. 나도 생각을 곧잘 해왔다. 특히나 덴마크에 거주하며 이제 학비가 모두 무료이기에 접근성이 더 쉬워졌기에 늘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다만 딱히 정확히 어떤 과목을 또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것과 몇 년 전 온라인으로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꾸만 휴학을 하는 나를 보며, 책으로 앉아 공부하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을 공부와 학위 때문에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의 교류, 네트워킹 그리고 여러 가지 득이 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내게는 여전히 사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깊지는 않아도 여러 잡학 지식들을 삶에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 일 것이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전한 세상에,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내가 진정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불안한 건, 그저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회가 학력에 대해 중시하고 가끔가다 '비자'가 발목을 잡을 때 속이 상하는 것 같다. 어떤 국가들은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취업 비자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많은 친구들이 석사를 마치고도 취업하지 못하여, 실무 경험이 없는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또 혼란스럽기도 하다. 인생에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 이렇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결핍을 느끼는 게 사람인지라.


내가 실력을 쌓고 경력이 생기다 보니 사실 더 이상 많은 곳에서 내게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절차상 말해야 할 때가 있지만 이미 실무경험이 있고 그에 대한 성과를 증명하면 정말 그건 종이 쪼가리 일 뿐이다. 심지어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는 영 꽝인 사람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리고 실망도 참 많이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 통장에 목표한 금액이 쌓이는 순간, 나는 인생에 잠깐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엄청 큰 금액도 아니고,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못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정했다. 즉 먹고사는 걱정을 덜 하게 되면 그때 다시 학교라는 곳에 돌아가 보기로 했다. 물론 뒤늦게 돌아가서 "아 역시 아니었어.."라며 또 자퇴를 할 수 있겠지만, 덴마크에 살면서 한 번쯤은 덴마크 대학교 생활을 겪어보고 싶기에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끝으로, 세상에 나를 늘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학력 콤플렉스 또는 자격지심이라고 하기에 나는 너무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여전히 세상을 누비며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있기 때문에 그저 약간의 '결핍'으로 생각한다. 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약간의 증명이 필요하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 만약 내가 정말 일을 생각보다 못해서 회사에서 잘리거나 사업이 망한다고 해도 그냥 내 길이 아니었던 것뿐. 나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일 것이며, 굉장히 멋진 사람일 것이다.


내 안의 불안감과 결핍을 잘 활용해서 성장을 하자.

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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