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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Nov 27. 2022

덴마크에서 겪는 계절성 우울증

찾아온 북유럽의 혹독한 겨울

처음 덴마크에 오게 된 계기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근데 막상 처음 도착했던 2015년 1월. 겪어보지 못했던 날씨와 기후에 적지 않게 당황을 했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뼛속까지 시린 추위, 한국에서는 태풍이라고 여겨졌을 만한 바람이 매일 이어졌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하루 종일 어둡고 침침한 날씨. 그것도 아주 잠시 오후 3시를 기점으로 순식간에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잠깐 영국에 살았을 때도 날씨가 참 별로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우울한 날씨였다. 그래서 그런지 역설적이게도 덴마크는 가장 행복한 나라임과 동시에 인구의 8% 센트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나라이다.


이곳에서 세 번째 맞이하는 겨울, 어김없이 계절성 우울증이 찾아왔다. 10월부터 몸과 정신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도 자도 끝없이 졸리고, 피곤하고 심각하게 감정적이고 우울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로 오전 6시에 기상을 하는데, 그때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면 여전히 새벽 2시가 아닐까 싶을 만큼 어둡고 깜깜하다.


처음엔 그냥 해가 짧아져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계속 예민하고 아무런 의지도 생기지 않고 몸이 아파왔다. 매일 비타민 D를 챙겨 먹고는 있지만 그걸로 부족한 것 같아 결국 주치의에게 SOS를 보냈다. 처음으로 만난 주치의는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북유럽 덴마크에 오신 걸 환영해요. 아직 이곳이 익숙하지 않으신 가보네요. 저는 이곳에 평생 살아도 겨울은 늘 숙제 같으니 너무 걱정 말아요."라고 하셨다. 일단 비타민 D 함량이 더 높은 것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셨고, 소형 UV 라이트를 구매해보는 건 어떠냐고 하셨다. 워낙 햇빛을 받기 어렵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스스로 햇빛 테라피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가서 북유럽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어떤 제품이 좋은지 추천까지 해주었다. 그 정도로 보편적일 줄 몰랐다. 작년은 대체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번 연도는 꽤나 고통스럽다.

코펜하겐 11월 오후 5시

덴마크 코펜하겐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발트 3국 라트비아는 훨씬 더 춥고 해가 짧다. 그런 북유럽 태생 남편에게 이 생활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물어보니 남편 또한 평생을 북유럽에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매번 여름이 끝날 때쯤, 나와 남편 모두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냥 짧은 여름이 끝나는 게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겁이 날 정도였다. 막상 겨울이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이제 막 시작되는 겨울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더 위쪽에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할 정도다. 주위에서 들은 바로는 상류층의 덴마크인들은 겨울마다 남유럽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 별장을 사두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여름이 될 때쯤 다시 덴마크로 돌아와 여름을 맞이한다는 것.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같았다.


나와 남편도 내년부터는 여름휴가를 따로 쓰지 않고 겨울 휴가 6주 몰아서 쓰기로 했다. 동남아를 가건, 해가 하루 종일 떠있는 어느 나라던 떠나야겠다고 합의 봤다.

코펜하겐 7월 새벽 3시 30분

북유럽의 여름은 '천국'과 다름없는데, 그 이유는 해가 거의 지지 않는 백야 현상 때문이다. 7-8월에는 밤 11시가 넘도록 밝고, 아주 조금 어두워졌다 다시 새벽 3-4시부터 해가 뜨기 시작하다 보니 그 시기에는 또 오히려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짧은 여름이 참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지는데 이걸 세 번이나 겪고 나니 일조량의 중요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런 반복적인 생활이 과연 몸과 정신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더 우울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지경까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억지로나마 글을 억지로나마 써보았다.

이 겨울을 잘 버티고, 넘길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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