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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Oct 30. 2022

맨땅에 헤딩하기 어려운 나라 '덴마크'

내겐 아직도 어렵고 낯선 덴마크 생활

2015년 덴마크에 처음 워킹홀리데이로 왔을 때, 나는 고작 만 23살이었다. 인도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우울증과 불안감으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그때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은 한줄기 희망 같았다. 그런데 막상 행복의 나라 북유럽 덴마크에 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매서운 바람과 무섭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지금은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집을 구하지 못해서 떠나는 사람이 우스개 소리로 10명 중 8명이라고 했었다. 집 구하는 게 가장 힘들고 그다음은 일 구하는 것이라고. 그것만 하다 3-4개월을 흘려보낸다는 말을 듣고 왔었다.


덴마크에 오기 전 아무리 찾아봐도 어떻게 이 나라가 흘러가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나는 다행히 운 좋게도 코펜하겐 내 '인도 커뮤니티'를 통해 집을 빨리 구했고, 일을 구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매섭고 유난히 추웠던 2015년 1월 겨울, 200장이 넘는 이력서를 넣고 직접 레스토랑과 상점에 돌려도 그 누구도 풀타임은커녕 파트타임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지쳐갈 때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덴마크는 아르바이트도 아는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곳이에요. 그만큼 신뢰와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저 말을 듣고 더 이상 내가 아무리 발품 팔아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코펜하겐에 거주 중인 한국인 커뮤니티와 인도 커뮤니티 등에 가입하여 혹시 일할 사람을 찾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함께 살던 인도인 주인아저씨에게도 부탁을 했다. 제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바로 인도 레스토랑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아무 일이라도 간절했던 나이기에 면접 전 열심히 그 레스토랑 메뉴를 달달 외웠고 내가 인도에서 살았었다는 것을 어필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붙었는데 인종차별로 한 달만에 관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분하고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 후 또다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기회를 바로 얻을 수 있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셨던 분이 곧 떠나실 예정이라 본인 대체자를 찾는데,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꼭 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분 덕분에 레스토랑 주방 보조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인 매니저가 "XX 씨가 소개해준 사람이니까. 다른 건 안 물어볼게요."라고 질문을 거의 하지도 않았고 나를 맹신해주셨다. 그때 놀랐던 건,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들어와 이력서를 내미는데 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누군가 내게 해주었던 '신뢰와 연결사회'그 말이 사실이구나를 깨달았다. (물론 아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일을 구한 사람들도 드물지만 분명 꽤 있다)


또 다른 예로, 2017년에도 비슷한 것을 목격했다. 바로 남편의 취업.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여느 덴마크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처럼 인턴생활을 했었는데, 그때 만난 CTO분이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시면서 남편을 스카우트해갔다. 그 후로도 이직을 한 번 더 하셨는데 남편과 함께 일했던 다른 몇 직원들도 함께 데리고 가셨다. 새로운 인원을 뽑느니 아는 사람을 데려가겠다는 말이 낯설었다. 물론 스타트업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덴마크 회사에서는 아예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퇴사하고 나간 직원을 다시 뽑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말이 있어."


재작년 덴마크에서 먼저 취업한 인도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에이 설마라는 말과 함께, 나의 미래와 기회를 걱정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이 되었고, 나도 덴마크에서 회사를 다니며 비슷한 경험을 지난주 하게 되었다.


지난주 금요일은 두 명의 퇴사자 파티가 있었는데, 두 명 다 공교롭게도 덴마크인이었고 둘 다 현재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내겐 무척 흥미로웠다.


1. 퇴사했던 회사로 돌아가는 케이스

2.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의 스카우트


퇴사했던 회사로 재 취업을 한다니.. 이런 케이스가 보편적이라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고,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이 이직을 하시면서 스카우트를 해서 떠난다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 회사도 그 팀장님이 오실 때 함께 왔었다고. 직접 눈으로 보고 겪으니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타 동료들의 추천으로 들어온 케이스가 꽤 많다는 것이었다. 혹은 대학원을 다니며 인턴생활을 거쳐 온 케이스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면접을 보고 들어온 나를 더 신기하게 여기는 듯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함께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덴마크 동료와 있던 일이다. 내년에 열리는 큰 박람회를 함께 준비 중이라 업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총 6개의 리스트가 있었는데, 세 곳에만 디자인 의뢰를 해둔 상태였다.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적이라 북미권에서 온 매니저는 나와 그녀에게 나머지 세 곳에도 의뢰를 빨리 해서 시안을 받아달라고 했다. 연락처를 찾아 이메일을 쓰고 있는데 덴마크인 동료가 나를 따로 불러 의논할 게 있다고 했다.


"써니, 연락해둔 세 곳은 이전에도 몇 번 우리 디자인을 했던 에이전시예요. 우리를 잘 알고, 믿을 수 있어요. 근데 나머지 세 곳은 우리한테 새로 연락을 준 회사들이라 신뢰가 가지 않아요. 시간도 더 걸릴 거고요. 모르는 회사에 디자인을 맡기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나와 매니저는 예전에 디자인을 맡겼던 업체들이 리브랜딩 전의 느낌을 많이 살려내서 이번에 새로 아예 새로운 업체를 가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었는데, 덴마크인 동료는 무척 거북하다는 듯 의사를 표현했다. 내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좋게 말하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틀에 박힌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덴마크인들이라고 모두가 저러진 않겠지만 소문으로만 무성하게 듣던 그들의 특성을 회사에서 겪으니 놀라웠다.


해외생활은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똑같이 힘들고 외롭겠지만..덴마크는 정말 아무런 연줄 없는 외국인으로서, 맨땅에 헤딩하기가 몇 배로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한 주였달까. 비록 내겐 덴마크인 남편도, 가족도 없지만 덴마크인 친구들도 조금씩 생겨나는 걸 보니 오랜 시간과 과정을 견뎌내고 이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아 안도감도 느껴졌다.


덴마크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참 내가 온 세상과는 다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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