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초밥
남편과 연애시절 라트비아 시부모님께서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시아버지는 모든 음식을 참 맛있게 드셨다. 매운 음식도 좋아하셨고 고추장도 따로 사가실 정도셨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아무리 맛 좋은 곳에 모시고 가도 영 탐탁해하시지 않으셨다. 한 입 드셔보시고는 수저를 바로 내려놓으셨고 결국 집에 돌아와 나는 시어머니가 주식으로 드시는 감자를 쪄드렸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아시아를 처음 와보셨다지만.. 지구 반대편까지 오셔서 본국의 음식을 찾으셔야 만 했을까 하고, 유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도 늘 김치와 쌀밥이 필요하신 분이고 해외여행을 모시고 가도 한식당을 제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두 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비위도 강하고, 강한 향신료도 가리지 않고 잘 먹기 때문에 한식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고,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덴마크 이민생활을 하면서 향수병이 크게 왔다. 11월부터 마음과 몸이 오랜 기간 아팠는데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하루 세끼 빵과 버터 그리고 치즈를 먹어도 괜찮던 내가, 갑자기 달래 된장국, 순댓국, 청국장 그리고 설렁탕에 섞박지가 먹고 싶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된장찌개를 만들면서 또 한참을 훌쩍였다. 너무 슬펐던 건 그렇게 어렵게 된장찌개를 만들었는데 맛이 없어서 그게 또 서글퍼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나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이런 사람일 줄이야. 내가 어른이 된 걸까, 혹은 그냥 아파서 잠시 약해진 걸까. 이런 변화가 무섭게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이 점차 호전되면서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는데 나는 자꾸 특정한 한식이 먹고 싶어 졌고 그 마음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덴마크에는 한식당이 몇 곳 있지만 가격도 가격이지만, 맛이 없어서 주로 집에서 해 먹는 편인데 원하는 재료를 구하기 쉽지가 않다. 그러던 와중 크리스마스 겸 연말을 보내기 위해 시부모님이 계신 라트비아에 가게 되었고 나는 신이 났었다. 라트비아 리가에는 유일한 한식당이 있는데, 그곳이 그나마 북유럽에서 내가 먹어본 한식당 중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밤늦게 도착한 나와 남편은 다음날 일찍 눈을 뜨자마자 한식을 먹으러 한 시간을 차를 타고 달려왔다. 내가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그렇게 맛있냐고 했고 나는 정말이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김치찌개에 또 김장 김치를 얹어 먹는 나를 보면서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그러고 나서 또 다음날, 다다음날.. 매일 나는 허기가 졌다. 아무리 빵 조가리를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밥이 자꾸만 먹고 싶어서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매일 나를 데리고 한 시간 거리의 아시아 식당들에 데려다주었다. 꼭 한식이 아니어도 그냥 이상하게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혹여나 임신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밥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결국 남편과 한식당에서 김치를 따로 사서 시부모님 냉장고에 보관했고, 크리스마스에는 마요네즈가 잔뜩 들어간 라트비아 음식에 속이 좋지 않아 라면을 사다 끓여 먹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아시아에서, 한국에서 온 아주 유별난 며느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양심상 오늘은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음식들을 먹어야지 했는데 도무지 속에서 받아주질 않았고 결국 굶게 되었다. 괜히 남편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스스로가 너무 유난스러워서 화도 났다. 그러다가 홀로 그냥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시어머니가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을 눈치채시고선 하신 말씀.
"초밥 시킬게."
라고 한마디 하시고 방으로 올라가셨는데,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다. 유난스럽게 자꾸 쌀밥을 찾는 내가 싫어서 눈물이 났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라트비아는 더욱이나 아시아 음식점을 찾기 힘들고 그나마 보편적인게 스시라 한식 대신 초밥이라도 사주시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내가 시부모님께 너무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하고 민망하고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당신은 지금 힘들고 외로운 걸 밥으로 채우려는 것 같아. 덴마크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도 본국으로 떠났고 회사 생활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외롭고 힘든데 그걸 밥에 의지하는 것 같아. 근데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질 거니까 자책하지 마. 가족이니까 괜찮아. 다 이해해."
남편의 말을 듣고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외로움의 표출이 한식 혹은 쌀밥으로 나타나는 것을 깨달았다. 이겨내야 할 것들을 나는 밥심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거구 나를 알았다. 그제야 조금이나마 밥에 대한 집착이 아주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 사람이 한식을 먹고 싶은 게 뭐 어때서?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말이다. 그저 더 젊고 어릴 적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내가 직접 겪게 되니 스스로의 변함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유별난 한국인 며느리는 결국 시어머니덕에 하루종일 쫄쫄 굶다 밥이 가득한 라트비아식 스시로 든든하게 속을 채웠고, 또 다른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밤을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