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알아봤던 건 '학교'였다. 하고 싶은 개인 프로젝트가 생겼고 그걸 이루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것들이 있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학비를 알아보니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와 떨어져 멋지게 살 줄 알았는데 오자마자 현실에 벽에 부딪혀 고민하고 있다니..
아빠는 내게, 집이라도 팔아서 지원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예체능 계열에 학비와 집이 멀어서 자취까지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산떠미 만한 빚을 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싫었다. 어쩌면 그만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도 그는 내게 항상 연락을 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떠나보내서 미안해.
생각이 짧았어. 제발 돌아와 줘"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그가 한국에 와서 나를 설득했을 때도 결코 흔들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천 번을, 만 번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돌아왔고 나는 그 없이 나만의 시간이 절실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전화로 함께 울 뿐이었다. 그렇게 학비로 고민을 하다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그냥 일 할래
한 번쯤은 한국에서 일해볼래 그리고 나 잘할 거야"
그와 부모님 또 친구들까지 모두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국에서 과연 내가 적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정말 해냈다.
한국에 6월에 들어와서 7월 한 달간 학교를 알아봤고 무산이 되어 8월 내내 취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반드시 8월 안에 취업에 성공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냥 아무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좋아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제대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2017년 8월 말, 현재 재직 중인 곳에 들어가게 되었고 9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린 3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내가 취업을 하겠다고 준비할 때, 그도 함께 취업을 준비했다. 그는 원래 공부를 좋아했고 원래 계획이라면 그는 박사과정까지 할 예정이었지만 그는 우리가 다시 빨리 함께 삶을 꾸리려면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그만의 헌신이었고, 우리에 대한 믿음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둘은 같은 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덴마크에서 개발자로 나는 한국에서 마케터로. 서로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태 없던 삶이 생긴 우리들은 서로 너무 바빠 소홀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각자 행복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더 바쁘고, 새로운 삶을 만나기 시작해 일에 푹 빠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내게 결혼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헤어짐을 계기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와 달리 나는 반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굳이, 지금 결혼을 해야 해?
나는 이제야 내 삶이 즐거운걸?"
그렇게 나는 결혼과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를 사랑하고, 사랑했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지만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어쩌면 너무나도 편하고 좋은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한국에 정이 들기 시작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울수록 재미있는 일 그리고 한국에도 생겨버린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나는 결혼하자는 그의 말에 지속적으로 조금 더 미루자고만 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나도 그만큼 그에게 헌신했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진지했었기 때문이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덴마크로 돌아갔었고 그동안의 과감했던 선택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우리는 결혼을 꿈꾼다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내게, 그는 참 무한한 서포트를 해주었다. 본인이 한국에서 살 의향도 있으니 좋아하는 일을 관두지 말라고 해주었고 일을 사랑하는 나에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한국에 올 예정이었다. 이제는 함께한지 4년 차가 되니 어느 정도 심적으로 준비도 되었고 무한한 싸움 끝에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도 지금 그의 일을 사랑한다.
좋은 조건과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커리어를 오직 나를 위해 다 버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물론 그는 똑똑하고, 한국에 와서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도 그의 회사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알기에 우린 계속 롱디를 지속하기로 했다.
연애도 잘하고 싶고, 일도 잘하고 싶은데 우리 둘 다 그게 잘 안 돼서 속상할 때가 정말 많다. 가끔은 솔직히 이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와 나의 생일, 크리스마스 날 등. 홀로 보낼 때면 사실 다 내팽개치고 그와 함께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도 그런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고..
그럼에도 우리가 이 힘들고 어쩌면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할 것이고, 그래도 우리는 결혼을, 함께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각자의 삶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주 결혼이란 주제로 엇갈리고 싸우고 속상할 때가 많지만, 지난 3년 6개월 동안 변하지 않은 건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니 우리는 세 번이나 결혼을 할 뻔했고 우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느낀다. 장거리 연애를 통해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아픔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해졌고, 이제야 진짜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