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1월 말 포르투갈로 떠나야 했던 나는 과감히 포르투갈 계획을 버렸다. 그곳은 내게 아주 오래전부터 꿈에 그리던 나라였다. 유럽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꼭 포르투갈만은 가보겠다고 20살 때부터 인도 다음으로 좋아하던 곳이었다. 3개월 동안 포르투갈에서 일하며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세우려던 내게 나타난 이 사람 그리고 이 관계.
너무나도 콩깍지가 낀 터라 고민 없이 포르투갈행을 취소하고 덴마크에 3개월에 더 머물렀다. 정말 이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고, 가슴이 터질 만큼 설레었던 시간이었다. 3개월이 끝이 다가올 때쯤, 나와 짝꿍은 슬퍼지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롱디(장거리 연애)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능하긴 한 건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연애 초반에 서로 좋아 죽는 상태에서 어떻게 떨어지란 말인가? 그래서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 그냥, 혼인신고하자.
그리고 비자 연장해서 여기 있으면 안 돼?"
솔직히, 안 흔들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 이미 2월 달에 반지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커플링처럼 주고받은 것이었을 뿐. 정말 진지하게 결혼을 위한 반지는 아니었다.
만난 지 연애 4개월 만에, 결혼이라..
한참 좋아 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그 콩깍지에 우리는 대단한 실수를 할 뻔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정말 중요한 사건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돌아와 버리는 나의 습성이 우리를 살렸다.
물론 4개월 만에 결혼을 한 다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에겐 큰일 날 뻔할 일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엄마는 진짜 멀쩡하셨다. 딸이,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의 남자 그리고 만난 지 4개월이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저 행복한 길로 신중하게 알아서 선택하란 말만 남기셨었다. 그러 보면 우리 엄마도 참 쿨하다.
잠시 한국행을 선택했다
돈이 다 떨어졌다. 포르투갈에 가지 않았고, 그 후에 계획이 전부 다 바뀌었다. 한국에 돌아갈 마음이 없었는데..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최고 우선순위로 바뀌었고, 우리가 결혼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바로 한국뿐이었다.
정말로 독립적이던 내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랑에 인생 자체를 베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도 그랬다. 서로 정말 의존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꿈꾸었다. 우린 천생연분이라 생각했었다. 싸운 적도 없었고, 그냥 모든 것이 예뻐 보이고 멋져 보였던 때였으니까.
나는 먼저 한국에 돌아갔고, 우리의 첫 롱디가 시작되었다. 나는 분리불안장애처럼, 그가 보고 싶어서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겪었고 엄마에게 진지하게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사랑하면, 뭘 따지고 고민하냐며 하라고 했다. 너의 행복이 그 사람이라면 엄마는 존중해주고 응원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그가 한국에 왔다. 부모님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리고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후 그리고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었을 때 정식적으로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해서 덴마크에서 삶을 꾸리기로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모든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서로 보이기 시작했고, 매일 싸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남자랑 결혼을 생각했었는지 의문이 들만큼 싸우고 또 싸웠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고 상처를 주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저 사람이 나의 미래 방향을 바꾸어놨을 만큼 내게 영향력을 끼친 저 사람이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고,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덴마크에 다시 갔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그렇게, 짧았던 한국 생활을 끝으로 그가 먼저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덴마크로 돌아갔다. 나는 고민을 했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모든 것을 잃은 상태로 그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한 달 후 덴마크에 돌아갔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만 있으면, 그와 함께면 내 인생이 온전히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역시나, 그건 내가 아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우울해졌고 내가 아니라고 믿었다. 행복하지만, 공허했고 슬프지만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는 여전히 대학생 신분에, 늘 바빴고 경제적인 이유로 우리는 잦은 싸움이 오고 갔다. 매일 밤을 울었다. 낮에는 웃다가, 밤에는 울었고 내가 너무 하찮아 보였다. 나를 잃어버린 기분으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큰 결정을 하게 된다.
그와 크게 싸우고 며칠을 고민 끝에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는데, 누굴 사랑해
나를 잃어버린 상태로 나답지 않은 상황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느꼈다. 이건 분명 후회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는 그냥 나보다 그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이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 나부터 먼저 사랑해볼게
그리고 혼인신고를 하기 한 달 전, 그에게 말했다.
"나 떠날게. 한국으로"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물론 그는 어리석었다 (멍청이..) 이유는, 그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대학생 신분에 아직 본인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하는 그 또한 나를 감당하기엔 어려웠다고 지금은 느낀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내 발 스스로 서보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쯤은 정면 돌파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한국에 돌아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건 또는 일을 시작해보겠다고.
용기가 필요했다. 나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한국에 왔다.한국에 돌아와 나의 삶에 조금 더 책임감있게, 그리고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그리고 뒤늦게 나를 보낸 걸 후회한 그의 연락을 모두 무시했다. 나는 나부터 찾겠노라 나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리라. 그래야 당신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변명 아니, 조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