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해외생활 중 가장 난감할 때는 바로 '아플 때'
나는 원래 연차를 정말 자주 써서 보통 이 맘 때쯤이면, 몇 개 남지 않아 있다. 그리고 보통 내년 연차를 당겨서 쓰거나 하는데 이번 연도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인도네시아에 오게 되면서 연차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체휴무까지 더해져 나의 연차가 늘어났다.
연차를 쓰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바쁘기도 하고 맡은 업무 때문이었다. 물론 나 하나쯤 빠진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당장 빠지면 일처리가 늦춰지는 게 싫었고 그게 바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매달 쓰는 2-3개씩 써버리는 연차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몸살?
사실 계속 몸이 쉬라고 요청하는 건 매주 아니 매일 느꼈다. 주말엔 거의 기절하다시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겨우 겨우 일어나 운동을 가거나 걷고 싶어서 쇼핑몰을 갔다. 하지만 그 마저도 피곤한지 피로가 축적되어 결국 몸살이라는 아이를 내게 선사했다.
일주일 전부터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신경을 쓰던 차 오늘 아침부터 컨디션이 정말 엉망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집중도 안되고 콧물이 나길래 따뜻한 커피를 계속 마시며 달래곤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 칼퇴를 하고 집에 왔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소파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그 전보다 훨씬 아픈 게 아닌가? 갑자기 겁이 났다. 이 아픈 상황에 든 생각은, 다른 것도 아닌 '일'이었다.
"나 내일 회사 못 가면 어떡하지? 아직 쉴 때가 아닌데.."
덜컥 겁이나 약이라도 사 먹어야 할 것 같아, 동료에게 혹시 약을 어디서 구매해야 하는지 어떤 약을 사야 하는지 물어보니 갑자기 배터리가 없다며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한 30분쯤 흘렀을까?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다름 아닌 '동료'였다.
"수치, 뭐야? 너 여태 집에 안 갔어? 어쩐 일이야?"
라고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 물어보니,
"써니 약이랑 밥 사 왔어. 제발 이거 먹어!
그리고 너 오늘 하루 종일 엄청 창백했던 거 알아? 열도 엄청나구나.. 어떡하지?"
라고 말하며 나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내게 약 봉투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건네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써니 많이 힘들지? 일이 너무 많아서 너 병난 것 같아. 우리가 맨날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우리 때문에 인도네시아까지 와서 정말 고생 많이 한다. 그렇지? 아니면 혹시 너무 몸이 아파서 우는 거야? 엄마 보고싶어?"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엄마 보고 싶어?' 부분에서 결국 빵 터졌지만 말이다. 22살,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사회초년생인 동료이자 동생 같은 아이가 내게 혹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냐는 말이 어찌나 귀엽고 아픈 것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그러면서 열이 너무 많이 나는데 어떡하냐며 혼자 발을 동동 굴리더니 자꾸 미안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마워 죽겠는데..
그러면서, 혼자 아프면 어떡하냐고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겠다고 말하는 동료에게 늦었으니 얼른 집에 돌아가라고 그 정도로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동료는 내게 해외 생활하면서 아프다는 건 정말 서러운 일인 것 같다며, 본인도 시간이 흘러 써니의 나이가 되면 더 용감해지고 더 강해질 수 있냐며 내게 물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냐고 물어보니 말도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아무도 없이 이렇게 아픈데, 엄마가 보고 싶지 않고 일을 생각하며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냐고 말이다.
마치 내가 무슨 엄청 대단한 사람인처럼 칭해주고 홀로 귀엽게 떠났다.
내일도 아프면 꼭 연차 쓰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누워서 글을 쓸 수 있는 것 보니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가 보다.
동료의 따뜻한 마음과 사다준 약을 먹고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기 때문인듯하다.
오늘 나는 그렇게 또 인도네시아에서 마음을 선물 받았다.
(아픈 건 관리 못한 나의 책임이자, 아픈데도 일을 생각한다는 건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책임감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현재 내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년 만에 격하게 아프니, 뭐 아플 때도 됐지 생각이 들어서 이 정도면 괜찮다. 그리고 아플 때 무언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건 덜 아픈 거다. 몸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과 고마운 동료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