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애심 - 10

正臨愛心 - 10

by 요즘씨

# 10



“잘했다.”

“네?”

“잘했다고.”

“어머니 맞아요?”

“나 말고 할머니가 고작 너 따위에게
말이라도 붙여 줄까 봐서?”

“어머?”

“이름이 정림이라고 했냐?”

“네, 박정림.”

“그 아이는 지 입으로 자기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고?”

“네. 결국 한나한테 들었어요.”

“사념은 곧 힘이 된다. 말과 생각은 결국
거대한 힘이 되어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그에 예속되게 하는 힘이 생기지.
그 아이는 자기 이름도 잊었을 게다.”

“네 어머니.”

“신줄을 이었다고?”

“네, 악한 악령은 아닌 것 같아서요.”

“섣부르게 행동했구나.”

“섣부르게 행동했다니요?”

“오늘부터 눈을 뜰 게다.”

“무슨 말씀이세요?”

“영안이 열릴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감당이나 할 수 있을꼬.
어디서 만난다고 했지?”

“삼성역 코엑스에서 만나려고요.”

“장군 신과 산군이 계시는 곳이구나.
할머니에게 말씀드려 보겠다.
들어가서 자거라.”

“아니, 어머니 영안이 열린다고 잡귀들이
달라붙기도 해요? 이미 옆에 붙어있는데?”

“그것들이 신령이라도 된다더냐. 아직 승천하지 못한
망령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근데 왜 신줄을 이었다고 영안이 열려요.
제가 괜한 짓 한 것 같아서 맘 쓰여요. 어머니.”

“네가 그러지 않았어도 조만간 그렇게 될 터.
개의치 않아도 된다.”

“할머니! 할머니 듣고 계시죠.
그 아이 좀 제발 지켜주셔요.
딱하고 불쌍한 아이예요.”

“쓸데없는 짓 하는구나. 신령을 모시지도 않는
네가 떠들어봤자 들어주시지 않는다.
들어가서 자라.”

“할머니! 부탁할게요. 제가 공양도 더 잘 드리고,
어머니 더 잘 챙길게요. 꼭 살펴줘야 해요!”




초조해진 나는 할머니에게 간절히 빌었다.


소용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어머니 꼭 기도드리고 주무세요.
할머니한테 말씀 좀 잘 전해주세요.”

“걱정하지 마라.”





+




이틀 뒤가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기업가의 손님 방문이 이어지는 날이다.



금(金)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고 복을 기원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굿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쉽게 내 식대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매출이 짭짤한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금요일을 맞는 이틀 전인 수요일부터


신당은 평소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머니를 돕는 신도들이 부산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 신은 신령 중에 지고한 위치에 있는 존재.


감히 신당에서 소란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분주함의 원인은 저 동자신들 때문이다.


독립된 신당에는 얼씬도 하지 않지만,


공양물이 놓인 독립된 신당과 야외 신당에는


부자들이 올린 양질의 공양을 탐하는


동자신들로 정신이 산만할 지경이다.



나는 그중 변태같이 여 신도의 한복 밑을


훔쳐보는 동자를 하나 불러냈다.




“야 하전사 이리 와봐.”




여 신도의 발 냄새를 맡으며 황홀해하던


변태 동자승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




“5초 안에 안 오면 앞으로 국물도 없다?”

[간다. 가라. 왜 부르나?]

“네가 여기 신당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게 누구 덕이지?”

[아, 위대한 애심동지 덕이지.]

“동지가 아니라 애심!”

[위대하신 애심 덕이지.]

“그래. 너 우리 어머니처럼 큰 신을 모시는 신당에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거 잘 알고 있지?”

[그냥 할 말만 하면 안 되나?]

“부탁할 게 있어. 이름은 박정림.
사는 곳은 성북구 정릉 쪽이야.
그 친구 좀 쫓아다녀 줘.”

[언제부터인가?]

“당연히 지금부터지!”

[일없다.]

“어제 동대문 다녀온 거 알고 있지?”

[뭐라고 하려는 거야?]

“너 나랑 말할 때 북한말 쓰지 말랬지?
컨셉 잡지 말고 제대로 말해.”

[알았다. 동대문 다녀와서 뭐? 왜?]

“밀리터리 샵에 다녀왔어 내가.”

[밀리터리? 밀리터리! 군복 사왔어?]

“그래, 이게 아마 6.25 때 북한군 디자인이라나 뭐라나.”

[성북구 어디라고 했어? 정릉? 이름은 박정림.
지금 바로 출발한다. 옷 어딨어!?]

“그게 그… 박정림 집에 있어.
걔가 옷장에 넣어놨는지 봉지에 그대로 뒀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잘 찾아봐.”

[바로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썩 믿음이 가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





아침이 밝았다. 새소리가 유난히 큰 아침이다.


신당에서의 새는 신령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오늘 치러지는 굿은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


부채를 사용할 예정인 것 같다.



새 모양의 장신구 자체가 신령의 보호와 영적 소통을 상징.


어머니가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일까?



안심이 되지 않은 나는 하전사를 불렀다.




“하전사 있으면 들어와.”

[있는데. 그 할멈 부적 좀, 떼줘.]

“아, 잠시만!”




어머니가 나를 지키기 위해 써준 수호부를 떼어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함에 넣었다.




“이제 들어와!”




노란색 가디건과 청바지를 입은 하전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군복은 어딨나?]

“저 옷장 안에.”

[진짜네?]

“이야기 먼저 해봐.”

[어제 찾아갔다. 걔 부정 탔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래 부정이라 하긴 그런데,
각시탈귀 하나가 붙어있더라.]

“어떻게 했어? 쫓았어?”

[숨어서 구경했지!]

“신부귀신이야?”

[응 신부귀신. 나랑 상성이 안 맞아.]

“어떻게 괴롭혔어?”

[그냥 인사만 하고 가던데?]

“예고한 거네?”

[응. 아직까진 괜찮아 보였어.]

“빙의는?”

[그것도. 아직까진 괜찮아 보였는데,
붙어있는 수호령이 망령이더라.]

“너는 그걸 보고 가만히 있었어!?”

[아니 나도 뭔가를 하긴 했지!]




하전사는 입고 있는 가디건과 청바지를


가리키며 가슴을 폈다.




[내가 이거 옷을 담고 있는 비닐봉투에
몸을 숨겼거든. 근데 걔가 스스로 귀압을
풀더니 봉지를 밟더라?
그래서 인사했어 ‘안녕?’이라고.]




“휴. 네가 나섰으면 각시탈귀는 떠났겠네?”

[응 떠나긴 했지. 나도 밥값은 해야 할 거 같아서
망령들 교육 좀 하고 왔다.]

“너 무슨 쓸데없는 짓 한 거 아니지?”

[아니. 그 망령 걔 부모지?]

“맞아.”

[그나마 소통 가능한 방법만 알려줬어.
노래로 전하라고, 들으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노래로 전하라고.]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근데, 이거로 안심할 수 없다는 건 알지?]

“어머님이 할머니한테 부탁한다고 했어.”

[할머니? 너, 뭔 사고 쳤냐?]



나는 오동나무로 만든 옷장에서


군복을 꺼내 던지며 말했다.




“됐고 이거 챙겨서 나가.”

[진짜 샀어?! 이야, 때깔 봐라.
진짜 고맙다! 캬! 죽인다 이거 봐!]

“잘 어울리네. 하전사. 토요일까지만
걔 좀 지켜봐 줘. 이거 부탁 아니다?
일에 소홀함이 느껴지면 바로 태워버릴 거야.”

[지금 당장? 금요일 공양 밥도 못 먹고?]

“그건 내가 따로 챙겨줄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남긴 하전사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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