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臨愛心 - 7
# 7
10월 3일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
의미 그대로 나에게는
새로운 하늘이 열린 날이다.
화려한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쌍문동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을 놓는 방법을 잊었다.
손을 맞잡는 것에 안심했고,
조금은 땀이 찬 것 같은 이 손을
놓지 않는 그녀에게 감사했다.
내 손에 잡힌 작은 손을 끌어올려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우리의 첫날. 조금은 앞서가고,
약간은 무례라 생각할 수 있는 내 행동을
아무런 의심이나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그녀.
그런 모습조차 나의 애정은 커져갔다.
잘 관리된 손톱에는 투명 매니큐어를 칠한 듯
윤기가 있었다. 손톱 거스름도 없이 깔끔하다.
적당한 크기의 손톱은 타원형으로 길다.
검지 손톱을 물어뜯은 흔적이 보인다.
오늘 내가 관찰하지 못한 습관이다.
내 어깨에 기대도 좋으련만,
시원한 성격과 다르게 그녀는 꼿꼿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가끔 맞은편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며 작은 눈인사를 건네곤 했다.
나는 그런 침묵의 순간도 낭비 없이
그녀를 관찰하는 시간을 보냈다.
대화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었다.
+
순간,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내 옆에 함께 앉아 있던 그녀는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이 순간을 유지하고자 무음 버튼을 눌렀다.
이내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받아야 하는 전화 아니야? 확인해 봐.”
“응. 잠시만.”
액정을 확인해 보니 대학 친구 승현이었다.
아마도 그녀와의 만남을 확인하고자
전화를 한 거 같다.
“대학 친구야. 오늘 우리 만나는 거 알고 있거든.
궁금해서 전화한 거 같은데?”
“근데 왜 안받아?”
“그냥 지금은 너한테만 집중하고 싶어서.”
“뭐야~ 정말. 그럼 이따가 집 돌아갈 때 똑똑히 알려줘.
잘 됐다고!”
“응! 꼭 그렇게 할게.”
우리는 다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피곤한 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눈을 감았다.
어깨가 자유롭지 않아 그녀를 바라보진 못했지만,
건너 유리창에 비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눈을 떠 창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입 모양만으로,
‘바.보.’
라고 말하는 것이 보여 난 또 웃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신.나.’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고개를 기댄 채
조용히 입을 뗐다.
“그거 알아? 신난다는 말의 어원.”
“그냥 기분 좋다는 뜻 아니야?”
“맞아. 근데 정확히 하자면,
‘신’이 ‘드러나다’라는 의미래.
흥분되고 특별한 기운이 나타난다는 거지.”
“아 정말? 전통적인 문화에서 파생된 말이네?”
“근데 나도 지금 그래. 신나.
아까 네가 한 고백 있잖아.
사실 내가 먼저 하려고 했었어.”
또 가슴이 이상하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리고 터질 것 같은
벅찬 감정으로 부족해 눈물이 고일 것 같은.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영화를 보면서도, 너는 나만 보더라.
그리고 놀이기구를 탈 때도 나만 봐.
이 손에서 조차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
온 신경이 집중된 것처럼 느껴졌어.
그런 너를 보면서 내 기분이 어땠게?”
“…”
“신났어. 너의 그 흥분이 느껴져서,
그 기운이 나한테도 너무 와닿아서,
그게 단순한 치기나 호기심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신나더라.”
“이런 말. 성급한 걸 수도 있어.
누구에게 한 번도 쉽게 해보지 못한 말이고.”
“나도 사랑해.”
“?”
“사랑한다는 말, 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응. 맞아.”
“우리 정말 잘 맞나봐.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어.”
“내가 직접 말 해주고 싶어.
사랑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두 번째 만남으로 사랑 고백을 받은 나.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겠지?”
“응. 그 이상이라 생각돼.”
“그렇구나. 신난다.
나 잠깐 눈 좀 붙일게.”
+
쌍문동은 언덕이 심한 지형이라 했다.
그녀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다는 나의 보챔을
빛나는 미소로 물리고 언덕 계단을 올랐다.
나는 언덕을 오르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에 남은
그림자까지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등을 돌렸다.
나는 홀로 걷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 외진 공간이었지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푸르고 붉었으며, 따스했고 벅찼다.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도, 그 거대한 남성이
나를 덮쳐도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랑은 그만큼 커다란 용기를 내게 주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에 진동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 시간을 오롯이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최근 일주일은 나에게 특별하다.
생에 처음 겪은 가위눌림과 귀신들.
그리고, 생에 처음 겪은 미칠 것 같은 사랑의 감정.
두 상황을 비교했을 때 나에게 어떤 것이 더
무게가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속에는 그녀 애심 뿐이었다.
특별한 날 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택시를 잡았다.
집까지 족히 만원이 넘는 금액이 예상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렵지 않게 택시를 잡은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14통.
모두 승현이었다.
문자도 10개 넘게 와 있었다.
이 정도로 궁금할 이유가 있나?
지나칠 정도의 관심.
다시 전화를 하기 전 문자를 확인하기로 했다.
[야, 나 엄마 따라서 무당집 간다.
엄마한테 그날 일 말했더니,
난리를 치더니 끌려가는 중.]
[너 오늘 그녀 만난다고 한 날이지?
일단 결과 보고는 이따 하겠음.
잘 만나고 진도 좀 빼고 와라.
남자는 용기가 다야!]
[나 지금 대기 중. 분위기 존나 싸해.
아 지금 들어간다!]
[야 시발 전화 받아]
[전화 받아 병신아]
[전화 좀 받아! ]
[미친새끼야 너 오늘 택시 타지 마라]
[야, 전화 받아! 병신아 택시타지마!!!]
[시발 새끼야 너 좆됐어. 제발...]
[혹시라도 이 문자 볼 때 이미 택시 탔으면
그냥 본 순간 벨트 쳐 매고 고개 숙여라.
두 손으로 머리 감싸고 숙여!]
휴대폰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벨트를 찾아 매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택시 안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 만나서 반갑다고 뽀뽀뽀
-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고개를 숙인 채로 운전석을 살폈다.
택시 기사는 미동도 하지 않은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얼핏 보인 그의 뒷모습에 부자연스러움이
보인다.
입을 벌린 채 정신을 놓은 모습.
평범한 사람이 아닌 이지를 잃은 듯한 표정.
그리고 운전석 옆 보조석에는
예의 지하철 내에서 본 군복 소년이
얼굴이 닿을 정도의 위치에서
눈을 부라리며 기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없는 핏기 가득한 눈.
택시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군복 소년의 갈라진 입술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그 두꺼운 크기만큼이나
뿜어대는 핏물의 양이 대단했다.
-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