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애심 - 8

正臨愛心 - 8

by 요즘씨


# 8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안구가 터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짧은 신음을 토해낸 뒤 인상을 찌푸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맡 의자에는 승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엄마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아빠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괜찮냐? 정신이 들어?”



승현은 흥분된 몸동작과 다른 조용한 목소리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얼마나 지났냐?”


“연락받고 온 지 1시간 정도 됐다.
몸은 좀 어때?”

“두통이 좀 있고, 나머지는 괜찮은 거 같아.
근데 너는 어떻게 알고 왔냐?”

“경찰이 최종 발신자 추적해서
나한테 연락했더라.”

“아, 그랬구나. 일단 인사해 우리 부모님이셔.”

“…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 맞다,
너 그 문자 뭐냐. 너 말대로 해서
일단 크게 다치지 않은 거 같긴 한데,
자세히 좀 말해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야말로 자세히 설명해 봐.”

“자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야, 나 여기 보호자 신분으로 온 거야.
너 부모님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며.
가족 연고도 없고, 혼자 살고 있다며.”

“…”

“근데, 너. 너 이름은 기억하냐?”

“내… 이름?”

“하… 진짜 무당 말이 다 맞네.”

“무슨 소리야 새끼야. 뒤에 우리 부모님…”


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는 눈물을 훔치고 계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30대 초반의 모습.

어색하다. 너무나 젊고 예쁜 엄마의 모습.

아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


그 정도라 다행이라는 듯이.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이.


이윽고 엄마와 아빠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뗀다.

나는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입 모양에 맞게 소리를 냈다.


“아. 빠. 가. 출. 근. 할. 때. 뽀. 뽀. 뽀.”
“엄. 마. 가. 안. 아. 줘. 도. 뽀. 뽀. 뽀.”
“만. 나. 서. 반. 갑. 다. 고. 뽀. 뽀. 뽀.”
“헤. 어. 질. 때. 또. 만. 나. 요. 뽀. 뽀. 뽀.”
“우. 리. 는. 귀. 염. 둥. 이. 뽀. 뽀. 뽀. 친. 구.”
“뽀. 뽀. 뽀. 뽀. 뽀. 뽀. 뽀. 뽀. 뽀. 친. 구.”

“괜찮냐?”

“승현아. 이 노래.
엄마. 아빠가…”



나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내 소리가 더 먹어들어갔다.



“이 노래…크흑. 이 노래 내가…
흐으으윽. 엄마… 아빠…”


뽀뽀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동요.

엄마가 날 재울 때 들려주던,

아빠가 날 깨울 때 들려주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뽀뽀뽀.

왜 이 노래를 잊고 있었을까.

이 노래를 내가 왜 무서워했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승현은

어색하게 내 어깨를 토닥인다.

기댈 곳이 필요했었을까.

나는 그의 가슴에 파묻혀

토해내듯 눈물을 쏟아 냈다.


찢어지는 두통.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눈물.

나는 승현의 품에서 원 없이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품이 어색해지고 멋쩍음이 느껴지던 때.

나는 조심히 눈물을 훔쳤다.

눈물과 콧물 범벅인 채로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


문득, 며칠 전 아침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어제는 엄마도 많이 놀라서,
챙겨주지도 못했네.
아들. 엄마 아빠 기다릴 테니까
말할 수 있을 때 천천히 말해줘.’



아, 계속 기다리고 계셨구나.

두 분이 떠나간 것을 인정하길.

기다리고 계셨구나.


그러고 보니,

닮았구나. 엄마랑.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애심을 보았다.

챙겨주지 못한 게 아니라,

날 챙겨주고 계셨구나.



“승현아. 미안한데, 잠깐만 나가주라.”

“…그래. 잠깐 시간 가져라.”



승현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병실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궁금한 것도 많은데,

기다리고 계시는 두 분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또 눈물이 차올랐다.

내 목소리는 떨렸고,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흑. 크흑…”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나는 하염없이 그들을 불렀다.

애타게. 그렇게 엄마 아빠를 찾았다.



“나… 너무 보고싶어서… 그래서…”
“엄마…흑… 아빠아…!”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만질 수 없는 그들에게 손을 뻗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엄마 아빠 미워… 흐흑… 크흡…”



두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엄마는 웃고 계셨고 아빠는 나와 똑같이 울고 계셨다.



“왜 울어… 아빠 왜 울어… 울지마 아빠.”
“내가 미안해…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엄마 아빠 이제 가도 돼…”
“내가 아빠 내가 미안해 크흡… 엄마…흑흑흑”
“뭐라고… 제발 뭐라고 말 좀 해…”


- 정림아.


엄마의 목소리다.


- 우리 착한 아들 정림이.

아빠의 목소리다.


- 씩씩해져야 해.


엄마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 용기 내서 이겨나가야 해.


아빠가 눈물을 쏟아내며 말한다.


- 정림아.


- 정림아.


- 우리 가여운 정림이.


- 우리 사랑하는 아들 정림이.


알 거 같다.

그들은 이제 가셔야 한다.

이제 그들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붙잡던 내가 눈물과 함께 손을 놓았다.


가여운 정림.

사랑하는 아들 정림.

그 따스한 목소리에.

나는 위로 받는다.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웠어. 미안했어. 사랑해요. 정말.”

“지켜줘서.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

“실망시키는 아들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나 나름 애쓰면서 살았어.”

“앞으로도 그렇게 할게요.”

“씩씩하게, 용기 내면서.”

“그렇게 살게요. 엄마 아빠.”

“이제 가세요.”



나는 무거운 입꼬리를 들어 올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 분은 이내 사라졌다.


내 가슴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애심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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