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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18. 2024

아쉽고 아쉬우나

장재현(2024), 파묘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처럼 ‘종교’로 인정받은 신앙과 민간신앙의 차이는 뭘까? 무교인 내게 사실 이것들은 별 차이가 없다. 글로벌 대중화에 성공한 경우와 아닌 경우 정도다. 그래서인지, 미디어에서 통상적으로 서양 종교는 성스럽게, 민간신앙은 기괴하거나 무섭게 다루는 꼴을 보면 괜히 마음에 안 들었다. 교회나 성당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민간신앙을 미신 취급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민간신앙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왠지 미신 취급하기 더 쉬운 느낌, 신앙이라기보단 오컬트적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 세련된 맛은 없는 느낌 따위 말이다.


    <파묘>는 기이한 현상을 맞닥뜨린 집이 무당에게 의뢰하며 시작된다. 대대손손 부자인 그 집의 아들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대물림받고 있다. 병이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도 전해지며 아기를 살리려는 부모가 수소문 끝에 무당을 찾는다. 크리스천 집안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무당은 문제의 원인이 할아버지의 묏자리에 있다고 판단, 풍수사와 장의사를 불러 이장하기로 한다. 그런데 묏자리가 이상하다. 여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라와 나라가 얽힌 비밀, 힘을 합쳐 비밀을 파헤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들, 악귀의 등장, 짧고 굵게 등장하는 능력자 조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롭게 흘러가지 못한다. 비밀은 역사(적 비화)에 조금만 관심 있어도 금방 유추할 수 있어서, 영화가 언제쯤 밝힐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그동안의 전개는 딱히 무섭지도, 긴박하지도 않다. 비밀이 완전히 드러난 시점부터는 다소 어수선해진다. 악귀는 무섭기보다 우습다. 대사 중심의 후반부는 오컬트 장르 특유의 공포 대신 지루함과 촌스러움을 남긴다.


    오히려 감흥을 주는 건 영화가 무속인과 민간신앙을 표현한 방식이다. 배우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이화림은 옷 잘 입는 젊은 여성이다. 신선한 요소로 많이 언급된 “컨버스 신고 굿함”은 화림의 캐릭터 디자인을 잘 보여준다. 함께 다니는 무당 봉길 역시 훤칠한 남성 청년으로, 배우 이도현이 맡았다. 조연으로 잠시 등장하는 화림의 동료 무속인은 배우 김선영의 연기를 통해 평범해서 비범한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꺼내는 의식부터 염, 굿, 풍수지리와 같은 민간신앙 요소는 필요 이상의 기괴함 또는 우스움 없이 비장하고 멋지게 표현된다. 기괴하고 스산한 건 민간신앙이 개입하게 되는 현상의 몫이다. 이러한 결은 영화 초반부, 화림과 풍수사 김상덕을 소개하는 장면에 무게 있는 독백이 함께 할 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캐릭터 연출이 좋을수록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부족함이 더 아쉽게 다가온다. 그래도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감독이 무속인과 민간신앙에 덧입혀진 편견을 재현할 생각이 없었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런 면에서 ‘세련된 무당’이 주는 신선함은 의미 있어 보인다. <파묘>의 흥행 사유가 여기에만 있지는 않겠으나, 색안경의 채도를 낮추고 시야를 넓히는 효과의 크기는 흥행에 어느 정도 비례하지 않을까? 일단 내게는 꽤 효과적이었다.





커버 이미지  장재현(2024), <파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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