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2006), 샤이닝
‘사과나무 아래서 오렌지 향을 찾는 사람은 답이 없다’는 얘기를 친구들과 한 적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질린 공통의 경험을 되짚다가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도 사과나무 아래서 오렌지 향을 찾던 시절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그런 시기가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사과나무를 못 본 척하며 오렌지 향을 찾아 헤매는 시기.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며 괴로워하는 시행착오의 시절. 나의 그 시절엔 자우림이 늘 함께 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 자우림, <샤이닝> 중
꼴같잖은 시절이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언제나 지금이 아닌 때와 여기가 아닌 곳을 간절히 바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거란 환상도 있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는 질문은 맞지 않다. 그냥 그런 시기였다. 머릿속에 가득 찬 질문 하나하나에 흔들리며 괴롭던, 고독을 견디기 어렵던, 모든 것이 불안하던 시기. 과거를 어찌할 줄 몰라 양손에 그러쥔 채 현재를 살지도 미래를 그리지도 못하던 시기. 그러니까 내가 찾던 오렌지 향은 이미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른 것을 핑계 삼아 울고 싶을 때 <샤이닝>은 좋은 명분이었다. 음악 자체가 일상에서 손쉽게 현실을 외면하도록 돕는 도구이기도 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음악을 틀고 잠들 때까지 음악을 끄지 않았고, 이어폰을 깜빡한 채 집을 나선 날이면 주저 없이 집에 돌아가거나 이어폰을 새로 샀다. 아마도 잠 다음으로 많이 찾은 도피처였다. 음악을 듣지 못했다면 진즉 자살했을 거야, 오글거리는 생각도 자주 했다. 죽을 용기가 있을 거란 과대평가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저는 이제 사과나무 아래서 오렌지 향을 찾지 않아요."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던 시간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시기를 지났다는 감각이 찾아왔을 때의 고요를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향해 이제 사과나무 아래서 오렌지 향을 찾지 않는다고 다짐하듯 말하던 때의 묘한 기분도. 까딱하면 다시 허상을 좇게 될까 두려워 다짐을 섞어 말해야만 하는 불완전함,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는 안정감, 더는 이 주제로 상대와 공감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적당히 뒤섞여 있었다.
<샤이닝>은 지금도 즐겨 듣는다. 풀리지 않는 의문도, 정답 없는 질문도, 이유 없는 외로움이나 살아 있다는 괴로움도, 결국 존재의 본질적 고뇌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받아줄 다른 어떤 곳이나 안아줄 사람을 찾지 않더라도 위로는 유효하다. 무엇보다, 다른 모든 자우림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김윤아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사과나무 아래서 오렌지 향을 찾던 때와 함께 이 노래를 떠올리는 건, 그런 시절에 꼭 필요한 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허상을 좇고 있다고, 네가 바라는 건 모두 환상이라고, 현실을 바라보며 네 주변에 있는 삶과 사랑을 귀하게 여기라는 입바른 말 대신 내 마음을 그린 듯한 노랫말 하나 정도를 품고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 시기도 있는 법이니까.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올 수 있으니까.
커버 이미지 자우림(2006), <Ashes to Ashes> 앨범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