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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knight Jan 13. 2019

소개팅, 셀프 마감

주말의 시작이 가까워지는 금요일 오후.


"소개팅 시켜줄게 사진 좀 줘봐"


갑자기 아래 있던 대화창을 끌어올리며 친구의 톡이 울렸다.

사진 한 장을 골라 넘겨주고 기다리니 다른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예쁘신데..."

인상이 좋고 웃는 모습이 예쁜 어느 여성분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소개팅 프로세스에 맞춰 퇴근을 하면서 톡을 보내본다.

"안녕하세요. 누구 친구 아무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답변은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할 즈음, 톡을 보낸 지 약 한 시간 정도 후에 왔다.

이어서 퇴근은 하셨냐며 간단히 톡을 다시 보냈지만 한참이 지나도 답은 오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시간 속에서도 신경은 폰이 밝아지는지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약 3시간이 지난 후에 답장이 왔고, 그분은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미 꽤 늦은 시각. 빨리 만날 약속을 정하고 이야기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어떠세요?"

하지만 대답은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사람은 톡을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봤지만 대답을 하기 싫은 걸까?

혹시 카톡 프사 중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내 피로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펼쳐진, 앞으로 벌어질 부정적인 스토리의 시나리오였다.

그 시나리오에는 만남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이런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느낌"이라는 단어로 퉁치는 것 아닐까.

여기에 사진에서 풍기는 다정함과 현재 상황과의 괴리가 더해졌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냥 내가 결정을 지어버렸다.

"별로 내키지 않으신 것 같은데 여기까지 하시죠." 

이런 내용을 담은, 약간은 밝은 느낌으로.


여기에는 답장이 빨리 왔다.

12시가 넘어서 톡을 확인했고, 그 시간에 보내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는 이유가 담긴 답장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이유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12시 넘어서 확인을 했다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이렇게 소개팅은 마무리되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는 그녀를 황당하게 했을까?

아니면 말하기 미안했는데 마침 대신 말해줘서 홀가분한 기분이 들게 했을까?

무엇보다, 그녀는 왜 소개팅을 한다고 한 것일까? 전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

마지막 답장이 늦게 온 것 때문에 저런 메시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소개팅에 들어설 때 어차피 처음에 하는 것은 만날 약속을 정하는 것이다.

최대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약속을 정하고) 이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맘 편히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첫 과정에서 조차 대화가 잘 안 이어지는 그 상황이 정신적으로 좀 피곤해졌다.

서로 잘해보자고 하는 일인데, 

왜 연락이 시작되면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면,

적어도 계속해서 기다리고 만남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남자의 도리라고 한다면,

넌지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건, 우리가 만난 후에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직 난 당신을 잘 몰라요.

그전에는 서로 들어오기로 한 이 판에 최선을 다하는 게 어때요?"


#30대남자 #소개팅 #셀프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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