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른 시간, 뒤 프레의 가장 뜨거운 안부
https://youtu.be/aI5rNHnAqTU?si=MDZF0UM5wKZy8I5X
태양의 후광을 닮은 노란색 엔젤 레이블이 턴테이블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런데 이 음반은 조금 특별하다. 앞뒤 라벨이 거꾸로 붙어 발매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오류반이다. 1975년의 옷을 입고 있지만 바늘 끝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1965년, 스무 살 뒤 프레의 가장 뜨겁고 원시적인 숨결이다. 라벨이 뒤바뀐 것이 어쩌면 운명처럼 느껴진다. 건강할 때의 예견하는 듯한 연주와, 모든 것이 약해진 후 덤덤해진 미래의 연주가 서로 자리를 맞바꿔 나에게 온 것만 같다.
바늘을 올리자마자 깊게 침잠하며 울부짖는 첼로 소리가 들린다. 가장 건강할 때의 녹음이라는데,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의 앞날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처절하다. 선입견일까 생각해보지만, 이건 분명 영매 같은 몰입이다. 고통스러운 표현이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를 함께 느끼고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1악장 말미, 휘몰아치는 프레이징에서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호흡은 감탄을 자아낸다. 서두르듯, 붙잡듯, 밀쳐내듯... 첼로가 이토록 강렬했던가. 마지막을 현으로 뜯어버리듯 마무리하는 그 기개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내 혈관 속 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듯 부드러운 첼로의 선율이 이어진다. 지휘자 바비롤리는 애절하게 아파하는 뒤 프레를 자상하게 지탱해주는 강한 보호자처럼 곁을 지킨다. 충분히 넘어가지 않고 지난 음을 조금이라도 더 끌고 가려는 그녀의 호흡에 가슴이 미어진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 가끔 숨이 멈추듯 숨 막히는 그 정적이 지나고 나면 곡은 다시 회귀하듯 1악장의 슬픔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끝맺음이다.
뒷면은 뒤 프레의 첼로 소품들로 채원졌다. 첫 곡은 협주곡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바흐가 채운다. 처절함이 사라진 곳에 질서와 평온이 다시 시작된다. 첼로와 함께 낮게 깔리는 오르간의 낮은 음이 방 안을 채운다. 그 포근함 속에 뒤 이은 뒤 프레의 백조(생상스)가 유영한다. 이 이상의 백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너무 아름다워 짧은 선율이 야속할 정도다. 기분이 들뜨기 시작할 무렵, 에스파냐의 춤곡 같은 경쾌한 리듬이 첼로와 기타의 완벽한 조화로 흘러나온다. 기뻐지려 하는 그 사랑스러운 선율에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인다.
마지막은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피아노 음이 심상치 않다. 고해성사라도 하듯 첼로가 덤덤히 고백하면, 피아노는 과하지 않게 그 말을 묵묵히 들어주며 응답한다.
가장 뜨겁게 시작해서 가장 겸허하게 끝을 맺는 이 음반을 만나서 참 기쁘다. 이 70년대 음반에서 보이는 태양 후광의 엔젤 레이블처럼, 그녀도 하늘에서 그 눈부신 빛을 받으며 잘 지내길 빌어본다. 뒤바뀐 라벨이 이제는 그녀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진다. 안녕, 뒤 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