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의 흙먼지 속에서 춤추다

by Watragod

https://youtu.be/aggk243tGAI?si=KUCowPvymmnm3wb2

Dvořák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 53_Ruggiero Ricci_1961

2026년 3월 31일

오늘은 오랜만에 루지에로 리치가 연주하는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을 꺼내 들었다. 자주 듣던 곡은 아니었지만, 첫 소절을 듣자마자 그 강렬한 박력에 마음을 뺏겼다. 드보르작 특유의 보헤미안 기질이 물씬 풍기는 시작이었다.

리치의 연주는 묘했다. 끊이지 않는 보잉과 쉼 없는 변화가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이어져, '잠시 쉬어 가야 하지 않나?' 하는 물음표를 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듣는 맛이 꽤 괜찮았다.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이 긴박하게, 때로는 살짝 엿보듯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LP의 1악장이 끝나고 판을 뒤집어야 하는 순간, 흐름이 끊길까 아쉬웠지만 그 정적 속에 남은 잔향을 느껴보았다. 2악장으로 넘어가니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박력 넘치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유려한 선율이 한적한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가볍지 않고 묵직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평화롭고 조금은 우울한... 참 묘한 감성이다.

중간중간 들리는 불안한 듯 '퉁' 하고 울리는 피치카토, 그리고 다시 고조되며 배경음과 독주가 서로 자기주장을 하듯 나서는 대목이 긴장감을 더했다. 그러다 다시 흐느끼듯 애절하게 그리움을 갈망하다가도, 목관악기가 손짓하면 바이올린이 슬그머니 따라가는 그 어울림은 정말 신세계 교향곡에 느꼈던 2악장이 잠시 스치는 듯 했다.

마지막 3악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마을 시장으로 바뀌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광장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리치의 독주가 신명 나게 춤을 추면, 주변의 오케스트라는 구경꾼이 되어 흥겨운 추임새를 넣는 듯했다.

순박하면서도 매혹적인, 웃음과 행복이 끊이지 않는 독주였다. 즐거운 땀을 흘린 듯 기분 좋은 한판이었다. 리치의 다음 연주는 또 어떤 에너지를 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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