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O7jsQ-tyOw?si=as41I21akvmJnZy-
루빈스타인의 쇼팽을 턴테이블에 올린 주말 아침, 96년 겨울의 기억이 LP의 틱 잡음을 타고 방 주위로 스며든다. 당시 군대 당직실에서 당직서며 몰래 듣던 낡은 테이프의 히스 노이즈는 이제는 본질에 더 가까운 LP를 통해 정갈한 디지털 결과물의 나만의 소유물로 다듬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연주는 쓸데없이 요란하지 않다.
그의 타건은 귀족적인 절제를 닮았다. 감정을 쥐어짜지 않고 담담하게 툭 던지는 소리들이 오히려 마음을 점잖게 가라앉힌다. 조성진의 연주에서 느꼈던 그 정갈한 안정감이 루빈스타인의 노년기 녹음에서도 고스란히 읽힌다. 어느 순간 들숨을 잊은 채 아주 천천히 날숨만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비워내고 가라앉히는 그 호흡 끝에 다시 숨을 들이켜면, 연주도 어느새 표정을 바꾸며 함께 흐른다.
한국의 격정적인 한(恨)과는 결이 다른, 폴란드 특유의 묵묵한 기개가 느껴진다. 역동적인 반항보다는 모든 풍파를 몸으로 받아내며 제자리를 지키는 성숙한 견딤이다. 무덤덤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비장함이 혼란했던 낮의 기분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준다.
마지막 곡의 몽환적인 선율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나면, 우울하면서도 묘하게 편안한 여운이 남는다. 억지스러운 위로 대신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시작하라"고 말해주는 노거장의 배려 같다. 커피 한 잔의 온기와 루빈스타인이 남긴 정적을 안고, 이제 다시 기분 좋은 주말의 일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이제 이 차분한 기분을 안고, 오늘 가장 먼저 어디로 시선을 돌려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