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이반일리치가 지금 태어난다면.
최근 웹소설의 화두는 ‘회귀’입니다. 회귀 물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일종의 ‘기회’로 주어집니다. 죽음을 강요당한 주인공이 과거로 다시 회귀하며, 인생 2회차를 살아갑니다. 주인공은 이제 강요받은 인생을 살아갈 것을 거부합니다.
일명 고구마 적인 과거를 벗어나 사이다 적인 새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인생에서의 ‘회귀’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입니다. 대신 인간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 귀한 ‘회귀’를 경험해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중의 가장 강렬한 회귀 경험을 저는 ‘고전’에서 찾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1800년대 후반을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꼭 같은 삶의 방식을 살아갑니다. 이반 일리치를 우리네 삶으로 투영시켜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오늘은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날입니다.
일찍이 출세 가도를 달리던, 죽기에는 너무나 젊은 동료판사의 장례식에 수많은 동료들의 애도물결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엔 오직 이 생각뿐입니다. '그의 공석을 차지하는 행운은 과연 누구에게 갈것인가' , 몇시쯤 장례식장을 빠져나와야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카드를좋아하는 판사들의모임' 약속에 늦지 않을까... 고통속에 몸부림치다 죽었다는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슬퍼졌지만, 곧 그 감정은 잊혀집니다. 그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닌 그의 죽음이었을 뿐이니까요.
일찍이 서울대에 입학하고 졸업 전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젊은 판사가 된 이반 일리치는 예정된 출셋길을 보장받습니다. 그는 마담뚜에게 소개받은 구색 갖추기에 딱 적당한 미모의 세련된 부잣집 딸과 결혼합니다. 슬프게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한때 방황하기도 하지만, 서울로 금의환향한 그는 치솟는 아파트 광풍 속에서도 한강조망권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놀라운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물론 집은 처가에서 해주셨습니다. 검사 월급으로는 120년 정도 모아야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뉴클레식골드인테리어로 집을 리모델링하고 8인용 이탈리아산 식탁을 장착합니다. 바야흐로 강남의 상류층 입성입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중고등학교 시절 알던 꾀죄죄하고 시시한 친구들과는 맞팔을 끊고, 최상류층 사람들과 인스타 맞팔을 시작합니다. 물론 가끔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하여 한강조망권의 럭셔리한 이탈리아산 8인용 식탁에서 돔페리뇽으로 치얼스를 하는 인증샷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의 부부생활은 안녕할까요? 사실 이반일리치의 아내 쁘라스꼬비야는 최근 남편의 뒤통수만 봐도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남편의 저런 끔찍한 성격을 참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아이가 특목고 입시에 실패했는데 그건 다 아내의 탓이라고 그는 말하고 다닙니다. 도대체 집구석에서 애 엄마가 남들 다 가는 특목고 하나 못 보내냐고 큰소리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문득 처연해 보입니다. #문득슬픈날 라는 이름으로 처연한 자신의 셀카를 인스타에 올립니다. 슬퍼도 여신 각이라는 댓글과 좋아요. 100개에 급 기분이 괜찮아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서울대 의대의 특진 교수도, 삼성의료원의 특진 교수도 각각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뭐, 곧 괜찮아질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질병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에 불과할 것입니다. 서울에서 잠시 떠나 최고급 리조트에서 며칠 쉬다 보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그의 안색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워집니다. 그는 이제 제 죽음을 직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서울대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철학 개론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생각해 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는 고로 스티븐잡스는 죽는다. 하지만, 스티븐 잡스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고 자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슬픔과 기쁨을 가지고 있는 실존하는 자신. 이런 자신이 죽을일은 절대 없습니다. 죽음은 그저 타자에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니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놀랍도록 꼭 닮은 이 명작은 우리에게 죽음을 타자의 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아둔함( 예정된 사형수이면서도 놀랍도록 죽음앞에서는 뻔뻔해지는), 죽어감 속에서 자신의 인생의 허무함과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 싶어 하는 연약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전의 가치는 그런 것입니다. 살아보지 않고 살아보게끔 만드는 힘.
이반 일리치의 삶 속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타자의 죽음 앞에서 펼쳐지는 거짓된 진실함의 이중성은 소설의 그들만의 것이 아닌 소름 끼칠 정도로 똑 닮아 있는 나의 모습입니다.
다시 한번 소설을 정독하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에게 죽음은 타자의 것인가?'
'나의 것인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반 일리치가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은 가족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통증을 삭히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괜찮은 척 하는 포장된 모습을 선택합니다.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었을까요? 아니면 지극히 끔찍하고도 평범한 것이었을까요?
이반 일리치를 읽고, 나의 삶을 ‘복기’해봅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 삶을 투영해보며 나에게 자문합니다.
이반일리치를 통해 한번 죽음을 경험해본 나는...
'실존하는 사이다 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통념속 고구마 적 인간의 삶을 답습 할 것인가.'
여러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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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실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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