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추억은 마음먹기 달렸다. 캠핑은 이사다 11편
* 본 글은 캠핑을 시작한 남편이 작성하고 와이프가 조금 손 봤습니다
확실한 것은 나는 라떼형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까페 라떼는 입에도 대지 않으니까. 쓰디쓴 아메리카노에 밍밍한 우유를 넣은 라떼는 도대체 왜 마시는 건지 나로썬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은 라떼형 인간은 죽어도 아니다.
커피로 굳이 나를 정의한다면 믹스형 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믹스 커피를 사랑하니까. 프림, 커피, 설탕이 조합을 이룬 달달한 세박자의 믹스가 좋다. 커피로 나를 표현하자면 라떼처럼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믹스처럼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될까?
사실 커피뿐만이 아니다. 내 입맛은 작금과 조금 비껴 나있다. 와이프가 맛있다는 퓨전음식이나, 세계 각 나라의 음식을 사실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오감을 자극한다는 그 향신료가 참으로 버겁다.
평범한 한국음식이 좋다. 김치찌개가 좋고, 된장찌개를 사랑하고, 라면으로 몇 끼도 견딜 수 있다. 해외여행을 가도 와이프가 찾아 놓은 현지 음식점을 따라는 가지만, 나는 언제나 한국음식이 그립다.
반면 와이프는 모든 새로운 것을 사랑한다. 새로운 향신료는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베트남, 태국, 터키, 멕시코, 각국의 음식을 도전한다. (비싼 음식은 대체로 사랑한다.) 단, 그런 음식 중에도 이 집은 괜찮고 저 집은 탈락시키는 아주 정교한 입맛을 자랑한다. (아직도 기준을 모르겠다)
와이프는 강원도가 다 좋은데 새로운 음식 맛은 부족하다며 매번 툴툴 그렸다. 그런 와이프의 눈에 쌀 국수집 하나가 걸렸다. 친한 언니가 극찬을 했다던 그 이름은 바로 "인생 쌀국수"이다.
리뷰가 엄청나다. 칭찬 일색의 쌀 국수집이다. 몇 번을 그 집 쌀국수를 먹자고 노래를 불렀는지 샐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이전에 두 번 정도 더 방문했었는데, 한 번은 사장님이 몸이 아파서 문이 닫혀있었고, 한 번은 쉬는 날이었다. 와이프는 너무나 실망했었다.
날이 풀린 오후 캠핑을 떠나며 대망의 '인생 쌀국수' 집에 들러 음식을 포장해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래저래 붐비는 음식점에서 먹지 않고 포장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인생 쌀국수를 먹어본다는 생각에 와이프의 얼굴은 한 겨울에 활짝 핀 눈꽃같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쌀국수가 뭐라고...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쌀국수를 포장하고 보니 캠핑 지까지 한 시간 정도는 가야 도착할 거리였다. 가까운 공원에서라도 테이블을 펴고 먹을까 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마땅히 먹을 곳이 없었다. 국수가 붇겠네.. 맛있는 인생 국수를 붇게 할 수 없다. 학수고대하던 '인생 쌀국수'를 맛없게 만들 수 없었다. 마냥 국수가 더 붇어 터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서 차에서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우리 네 식구는 자동차 2열을 접고 중간에 작은 수납박스를 두고 그 위에 국수를 올리고 먹었다.
국물은 조금 식어있었고, 면발은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 엉겨 붙은 면을 조심조심 나무 젓가락으로 저었다. 옹기종기 차에 앉아서 둘씩 짝을 이뤄 국수를 후다닥 먹었다. 와이프도 아이들도 정말 정말 인생 쌀국수란다. 그 좁은 차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국물이 행여라도 흐를까 조심조심 입을 오물거리며 먹은 쌀국수가 너무 맛있단다.
나는 음식은 다 비슷하게 느끼는 그런 무딘 사람인데도 내가 보기에도 쌀국수는 이미 붇어있었고 국물은 식어있었지만, 내 사랑 와이프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참 이상했다. 식당에서 바로 끓여 따뜻하고 탱탱한 면발의 국수도 별점을 매기는 사람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인생 쌀국수'의 맛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그 맛은 '가족의 맛'이었다.
국물은 식어있었지만, 우리 가족이 가득 채운 차 안의 온기는 너무나 따뜻했다. 우리는 붇어서 엉겨 붙어있던 국수처럼 끈끈했다. '여기요~ 덜어먹을 그릇 두 개만 주세요'라고 식당 주인아저씨를 부를 수 없었기에 머리를 맞대고 짝을 지어 나 한입 너 한입 사이좋게 박자를 맞춰 먹었다.
내 평생 가족들과 옹기종기 좁은 차에 앉아서 둘씩 짝지어 나누어 먹은 국수는 그게 처음이었다. 앞으로 또 이런 추억을 선물할 국수가 생길지 미지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인생 쌀국수'이다. 사실 그것 만으로도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히 '인생 쌀국수'였다.
*캠핑은 이사다(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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