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 아기 오리'
“못생긴 오리였을 때는 이렇게나 큰 행복을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백조 한 마리가 오리무리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는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주변의 암오리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 그는 더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그는 오리들의 스타였다.
‘긴 목을 봐. 우아한 날개를 봐. 오리들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야.’
‘그는 우리의 인생의 길을 알려주고 있는 거야. 우리도 백조가 될 수 있어!’
그가 바로 오리들에게 ‘미운 아기오리’라고 불리며 버림받았던 백조이다,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백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호수의 백조들이 그를 환대해줬지만, 그는 오리무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를 무시하던 형제자매와 어미 오리에게 말이다.
예상대로 아름다운 그의 모습에 오리들은 감탄했다. 말도 안 되는 소문들도 돌기 시작했다. 그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오리로 변한다든지, 신비의 샘물을 마시고 백조가 됐다느니 하는 기괴한 소문들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야기조차도 퍽 듣기 좋았다. 자신을 무시하던 오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것 그것만으로 깃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진정한 알을 깨고 나오십시오. 모든 오리가 백조가 될 수는 없지만, 어떤 오리도 백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막 연설을 마치고 오리무리로 내려왔을 때, 그에게 털이 빠지기 시작한 누런 암오리가 찾아왔다.
‘차라리 멀리 가버리면 좋겠구나!’라고 그에게 상처를 주었던 어미 오리였다. 그녀는 날개를 파르르 떨며 백조의 깃털 끝이라도 만져보려 했다.
“너는 정말 특별하게 자랐구나.”
백조는 그녀의 볼품없이 누런 목을 부리로 쪼아버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많은 오리들이 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 호수의 신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용서했습니다.”
수많은 오리들이 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몇 달이 흐르자, 누렇고 털이 빠진 늙은 어미 오리는 없었다. 궁둥이가 퉁퉁한 나이 든 오리 부인이 있을 뿐이었다. 오리떼들은 백조를 신처럼, 그리고 오리 부인을 성녀처럼 떠받들었다. 알을 낳기 전 암오리들은 오리 부인에게 축복을 받았다. 그녀처럼 훌륭한 자식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
“부디 커다랗고 우아한 백조의 알을 낳으세요”
그녀는 다시는 먹이를 잡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오리들이 그녀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고, 백조의 감동적인 연설을 듣고 싶어 했다.
그는 평범한 백조로 살 기회를 버리고, 백조의 무리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백조의 무리에서 그는 그저 불우한 시절을 겪은 보통의 백조였지만, 오리무리에서는 불사조였기 때문이다. 불 속에서 스스로 깃털을 활활 태워 새롭게 태어난 위대한 오리.
모두에게 내쳐졌던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호수에도 짝짓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처음에 그는 모든 암오리를 자신의 반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어떤 암오리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암오리들은 그를 동경했지만, 자신의 반려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짝짓기는 좀 다른 의미죠. 저는 평범한 반려를 원해요”
매번 그는 이런 식의 거절을 당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백조의 무리로 조심스럽게 헤엄쳐 갔다.
‘감히 오리 따위가 나를 거절해? 역시 백조 정도 되어야 내 반려가 될 수 있지’
그는 당당하게 그가 처음 호수에서 만났던 암컷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나와 결혼하지 않겠어요?”
백조는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며 말했다.
“나는 백조 모습을 한 오리와는 결혼할 수 없어요!”
이제 그를 제외한 호수의 모든 새는 자신의 반려를 찾았다.
백조를 추종하던 암오리들은 자신의 사랑을 찾았다. 반려와 함께 귀엽고 앙증맞은 알을 낳으며, 소소한 삶에서 행복을 찾아갔다. 그들의 귀여운 아가들에게 먹이를 잡아주고, 헤엄을 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백조가 되고 싶어 하는 오리들은 없었고, 누구도 백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대한 알을 낳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더는 오리 부인에게 축복을 부탁하는 오리는 없었다.
무거워진 궁둥이로 저 스스로 물고기는커녕 느려터진 지렁이 한 마리 잡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의 반질거리는 털은 다시 엉키기 시작했으며, 누렇게 변해갔다. 오리 부인은 표독스럽게 외쳤다.
“차라리 멀리 가버리면 좋겠구나. 너는 백조도, 오리도 그 무엇도 아니야!”
백조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단 한 마리의 반려만을 맞이하는 그들도 신중하게 자신의 사랑을 찾았다.
그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미운 오리 새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 걸까.
그때 호수에 검은 지프차 한 대가 섰다.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무릎까지 장화를 신고 있었고, 카메라와 커다란 그물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저 백조야. 오리들 사이에 있는”
백조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그중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가 백조에게 그물을 던졌다.
주변의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멀리 날아갔고, 인간들 사이에는 오직 바로 그 백조뿐이었다. 인간들은 그의 다리에 빨간 끈 조각을 달아주었다. 오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표시였다. 스페인에서 왔던 오리 할머니만이 가지고 있던 표식. 그것을 백조가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백조를 캔넬에 가둬 자동차에 싣고 가버렸다.
오리들이 웅성거렸다.
방금 그 표식 봤어? 할머니 오리 이후로 아무도 받지 못했던 표식이야. 미운 오리 새끼였던 그가 그 표식을 받게 되었어. 그는 진짜 특별한 오리였던 거야. 그들은 다시 백조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자동차가 달려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들은 백조를 조류관에 풀어놓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새들이 가득했다. 그가 정신을 차릴 무렵 교복을 입은 무리가 조류관에 들어왔다. 해설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답니다.
친구의 이름은 트루먼이예요. 자연에서의 이종간의 이타성을 관찰해보고자 했어요.
우리는 백조의 알을 오리 둥지에 몰래 가져다 놨지요. 그 뒤 트루먼이 어떤 역경을 딛고 일어나 백조가 되는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요?”
아이들은 소리쳤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 트루먼이야! 저 백조가 바로 트루먼이래!
“여러분도 결말을 알고 있다시피 불쌍한 트루먼은 결국 극복하지 못했어요. 제 핏줄을 찾아 백조무리에 합류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트루먼은 다시 오리무리에게 돌아갔어요. 과학자들은 그 비극이 바로 어미에게서 백조로서의 삶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답니다. 설마 어리석은 인간들처럼 성공한 본인의 모습을 오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돌아간건 아니겠죠?”
해설사는 설마 그랬겠냐는 눈빛으로 크게 웃었고, 해설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이 따라 웃었다.
“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가여운 트루먼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
아이들은 가여운 트루먼에게 힘차게 박수를 치며 소근거렸다.
“불쌍한 트루먼. 정말 가여운 새야.”
트루먼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두 날개를 활짝펴보인 다음 자랑스러운 빨간색 표식이 잘 보이게 할 뿐이었다.
인간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짐작했다.
‘인간들이 이상하게 생긴 두 날개를 부딪치며 나를 숭배하고 있어.’
트루먼은 호수의 오리들처럼 인간마저 자신을 떠받든다고 믿었다. 반려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빨간 끈조각을 달고, 인간들에게도 숭배 받고 있으니까.
다음날 그 다음날 더 많은 사람들이 트루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언젠가 트루먼은 알게 될 것이다. 조류관의 모든 새는 자신과 같이 빨간 끈 조각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트루먼: 트루먼 쇼 주인공의 이름이다. 태어나서부터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에 모든 삶이 생중계되는 인생을 살아간 주인공 트루먼이 진짜 인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