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경단녀 리사씨 취직하다.
10년간 전업맘이었던 리사씨는 재취업에 성공했다.
재취업의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 겁나 어려웠다.
왕년에로 시작하는 썰을 풀어보자면, 이십대 때 그녀는 한번도 서류면접에서 탈락해 본적이 없다. 이십대 때의 리사씨에게는 자기소개서를 기가 막히게 쓰는 엄청난 재능이 있었기때문이다. 스토리 텔링에 능한 그녀의 손길이 다니면 어떤 자소서라도 반드시 뽑고싶은 직원이 되고는 했다. ( 이제 보니 그녀는 자소서 컨설턴트를 해야했다.. )
그러나 사십대의 리사씨는 수도없이 서류면접에 탈락했으며, 엿같게도 우수한 인재이지만 안타깝게 모시지 못한다는 메일을 수도없이 받아보았다. 그러니까 그 재능은 20대 때만 발현되는 종류였던 것이다. 리사씨는 친구따라간 취업박람회에서 30분만에 휘갈겨 쓴 자기소개서로 대기업 최종합격까지 갔다. 뻔한 이야기지만 친구는 그날 떨어졌다. 만족을 모르는 이십대의 리사씨는 연봉을 더 준다는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으며 그 회사 마저 합격했다.
하지만 삼십대 후반부터 리사씨는 어떤 회사 면접도 보지 못했다. 사십평생을 입으로 먹고 살았기에, 면접 기회만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입을 털 자신이 있었지만, 면접의 기회는 사십대 경단녀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재취업을 노렸을때 리사씨는 호기롭게 공기업에서 시작했다. 그다음은 신입 계약직, 그다음은 시간제.. 리사씨는 쓰는 족족 떨어졌다. 경영학과를 4.5만점의 4.3으로 졸업했으며, 대학원을 졸업했꼬 수컷 공작의 날개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7년의 공백은 그녀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경단녀 리사씨'
호기롭게 대기업을 때려친 좋게말하면 '파이어족', 까놓고 말하면 '경단녀' 리사씨가 다시 재취업을 원한이유는 당연히 '돈'이었다. 리사씨는 미신에 약한 편이었다.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아이의 두뇌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미신, 엄마가 키우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미신, 그리고 엄마는 모성애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미신, 아이는 엄마의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미신.
그러나 리사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며 깨달았다. 아이는 사랑으로 키우는게 아니라 돈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리사씨는 자신있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왠만한 영어선생님보다 영어를, 왠만한 수학선생님보다 수학을, 그리고 왠만한 역사쌤보다 역사를. 공부에 재능이 있던 리사씨는 그렇게 모든것을 '엄마표'로 할 수 있다 믿었다. 어떤 학원에 가도 탐탁치 않았다. 그때 그녀는 영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찰떡같이 믿었기때문이다.
하지만 리사씨가 모르는게 있었다.
아무리 공부에 재능이 있다해도 내 새끼를 가르치는것은 조온나 어렵다는 불변의 진리말이다. 그래서 돈을 벌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로 결심을 한다.
리사씨는 풀타임을 포기하고 한푼이라도 벌기위해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강사를 했다.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강사는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끝나기 전에 2~3시간만 짧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엄마들에게 적격이었다. 게다가 시급도 괜찮다. 시급을 400원 인상하기위해서도 투쟁해야 하는 세상이지만,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리사씨는 최저시급을 받을 걱정은 없다.
리사씨는 무려 삼만오천원의 시급을 받았다. 세상에 쉬운일이 어딨겠냐만은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 엄마 아빠밖에 하지 못하는 만1세반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영어책을 읽어줘야 했고, 워크북을 해야했다. 원장에게 만1세만 워크북 수업은 빼자고 권했지만, 엄마들에게 보여줘야 하기에 안된다고 거절당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살짜리 아이들과 워크북 하는 날이 제일 좋았다. 그날만큼은 겁나 오버해서 노래를 하며 율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말이다.
리사씨가 제일 힘들었던 일은 수업중에 사진 찍히는 일이었다. 나이 마흔에 머리에 빨간리본을 하고 백설공주 치마를 입고 노래를 하는 모습은 결코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키즈노트에 올라갈 사진의 각도에 맞춰 화알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진찍는 시간에는 모든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돌아가며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척했다. 심지어 수업시간 내내 교실을 돌아다니던 아이까지도 옷을 예쁘게 여며주고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하는 척하는 자신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사실 리사씨는 7년간 놀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웠으며, 이동이 잦은 남편을 따라 이곳 저곳을 이사다녔다. 엄마표로 아이들 영어를 가르쳤으며, 본인도 꾸준하게 영어 공부를 했다. 글도 썼고, 대학원도 다녔다. 영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SNS 체험단을 하며 식당에서 공짜 밥을 먹고 쌍따봉을 외치는 리뷰를 써주기도 했다. 그리고 블로그 광고를 등록하여 하루에 적으면 1원 많으면 무려 5,520원의 수익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풀타임 직업은 정말로 구하기 힘들었다. 왜냐면 '경단녀 리사씨'이니까.
그런 그녀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그녀가 취업을 한 것이다.! 무려 7년만에 말이다.
7년만에 취업한 리사는 신이나서 친구들에게 톡을 보낸다.
"야 나 취업됨! 풀타임임 !! "
친구들의 반응은 정확히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1. 전업맘 : "야 진짜 부럽다. 진짜 대박이야. 너무 좋겠다. 정말 축하해"
2. 직장맘: " .... 웰컴 투 헬이다....."
과연 그녀는 7년만에 입사한 회사에서 적응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