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 매캐한 매연 때문에 한 시간만 걸어도 코끝이 까맣게 되던 용산은 없어지고, 힙해지고 영해져 버린 용산이 우릴 반겼다. 오랜만이어서 감을 일었다. 토요일 다섯 시 번화가에서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만나기로 했던 멕시코 전문식당엔 이미 서른여덟 팀이 줄을 서있었고, 두 번째로 찜해 놓은 식당은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가장 줄이 짧은 스페인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예상외의 분위기와 멋에 반해버렸다.
이십 대의 친구가 사십 대가 되었음에도 우리에게 서로의 겉모습은 모두 그대로였고( 물론 우리 눈에만), 여전히 젊고 싱그럽다 느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달라져 버린 길을 걷고 있었다.
A는 삼사십 대 치열하게 일을 해서 마흔에 임원이 되고 아이를 낳아 다섯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B는 삼십 대에 잠시 방황을 했다가 공기업에 잘 안착해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며, 현재는 일곱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중 나는 빨리 대기업에 취업했고 애도 가장 빨리 낳고 회사도 가장 빨리 그만뒀다가, 현재는 작은 회사 재취업하여 늦깎이 과장으로 일하며 고1, 중3을 키우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가장 파란만장하다 싶다)
이제는 너무 달라져 버린 우리 셋의 공통된 이야기는 놀랍게도 하나였다.
돈이 부족하다...
얼마가 더 있으면 우리는 여유롭다 느낄까?
오 년 전 나에게 물으신다면 월 백만 원! 이 정답이다.
전업맘 생활을 하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니 돈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아이 둘 키우느라 돈이고 옷이고, 시간이나 제대로 좀 있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얼마가 더 있으면 좋겠어?"
남편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딱 백만 원."
백만 원이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옷도 사 입고, 천 원 때문에 라테를 마시고 싶은데 아메리카노를 마실 일도 없겠지.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누가 돈을 낼까 고민할 일도 없겠지.
나는 백만 원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내 다른 글에 있지만)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월 80~ 100만 원 언저리의 돈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만족했을까? 월 백만 원이 더 있는 것이 당연한 일상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 돈을 아이들 학원비로 썼다. 여전히 옷을 살 때면 고민을 하고 천 원 때문에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누가 돈을 낼까 고민했다.
외벌이 칠 년 만에 직장맘으로 변신하여 받은 월급은 평균 삼백만 원이다. 딱 백만 원만 더 있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나보다 세배 더 벌고 있는 나는 세배 더 여유로울까? 이제는 돈을 쓸 때 덜 걱정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후를 걱정하며, 이년 뒤 필요한 전셋값과 아이들의 학비를 걱정하고, 지난 주말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먼저 낸다고 해야 하나 조금 많이 망설였다. 당연히 예전의 나보다는 여유 있어졌지만, 내 줄어든 자유시간만큼인지는 모르겠다. 돈은 그래도 벌되 시간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우리 중 제일 잘 버는 친구마저도 돈 걱정을 한다니 ( 물론 내가 걱정하는 수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지만 ) 마음이 시끄러워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을 들었다. 때마침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질문: 워킹맘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퇴근하면 일이 쌓여있어요.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법륜스님: 그럼 그만두면 되지.
질문: 스님, 현실을 너무 모르세요. 요즘은 맞벌이 아니면 힘들어요.
법륜스님: 조금 벌고 조금 먹으면 되지 무얼 걱정해?
스님이 정답이구나.
조금 먹으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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