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으로 무얼 했나요?
스물세 살의 나는 첫 월급을 학교 동문회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나이 지긋한 동문회장에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내 시작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나도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동문회장처럼 후배들의 닿고 싶은 자리에 있고 싶었다. 두 번째 달부터는 매달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삼만 원씩 기부했다. 그 외에는 의미 없는 지출을 많이 했다. 회식을 하면 택시를 탔다.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샀고, 가끔은 나서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 계산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처음 받은 상금은 백만 원이었다. 백만 원 중 이십만 원을 성당에 기부했다. 감사의 의미만 이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렇게 기부를 했으니, 계속 글로 돈을 벌 일이 많아지길 기원하는 의미도 조금 있었다.
퇴직 후 아이들을 키우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주로 벌은 돈을 아이들 학원비에 썼다.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블로그 수입 같은 푼돈은 모아서 주식을 샀다.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좋은 주식은 많이 오르기도 전에 중간에 팔아서 빚을 갚은데 썼고, 로블록스나 카카오페이처럼 잔뜩 내려간 주식은 아직도 내 계좌에 남아있다.
칠 년 만에 취업한 회사에서 첫 월급으로 산 물건은 타워형 무선진공청소기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디에 기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후배들을 위해 써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모교에 기부하지도 않고, 더 이상 성당에 성금을 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허무한 곳에 돈을 쓰지도 않는다.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는 일은 절대 없다. 아이들과 같이 쓸 수 있는 대용량 보습제를 구입한다. 가끔은 내가 내야 할 자리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는다. 매달 25일 월급이 들어오면 나는 내 노년과 세액공제를 위해 칠십오만 원을 저축한다. 아이 학원비로 칠십오만 원을 지출하며, 나머지 돈은 통신비나 공과금 같은 생활비로 쓴다. 오직 내 가족만을 위해 돈을 쓰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걱정 없던 이십 대의 나는 기부는 했지만, 나머지 돈을 나를 위해서만 썼고,
걱정 많은 사십 대의 거의 모든 돈을 가족을 위해 쓰지만, 기부는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재취업한 재주는 있지만..
벌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시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가정의 수입은 늘었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쓰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줄었지만 세상을 위해 쓰던 돈들도 줄어 버렸으니까.
글을 쓰다가 문득 의미를 찾고자 오랜만에 기부를 했다.
기부한 곳은 한국 말라리아 공동체이다. 홍보나, 광고에 기부금을 쓰지 않고 기부한 금액 전액을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모기장을 위해 사용한다. 부끄럽게도 이번에 기부한 돈은 만원뿐이다. (내 만원은 모기장을 세장 사는데 쓰였을 것이다.) 말라리아는 매년 오십만 명을 사망케 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달러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모기장 한 장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이 달러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만 내 월급 삼백만 원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한건 만원일지도 모르겠다.
** 의미를 찾고자 글을 쓰는 것이니, 글을 올리는 날엔 작게나마 기부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