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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의 수학 시간
(feat. 나의 하버드 수학 시간

당신 인생의 '난제'는 무엇인가요?

by Lisa

열세 살 큰딸은 '수학'이 인생의 난제라고 한다.

우리 부부의 난제는 '큰딸이 수학을 난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도 딸은 '친구와 놀기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억지로 수학 공부 중이다.

어쩌겠나. 이렇게 라도 시켜야 하는 것을.


딸은 한 번도 수학 교과 과정을 쉽게 넘어간 적이 없다. 매번 관심이 없었으며 매번 힘들어했다.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배포가 넓다. 다른 사람이 백점을 맞건 모두가 수학을 잘하던 나는 나 너는 너.

작년까지는 하기 싫으면 말아라 주의로 갔지만. 중학교를 앞둔 올해 우리 부부는 조금은 비장해 지기로 했다.


수학만큼은 정말로 웃긴 에피소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 딸

1학년 때였다. 딸이 수학 시험지를 가지고 왔다.

사과 다섯 개와 배 세 개가 있습니다. 모두 몇 개인지 답을 쓰시고 풀이과정을 적으시오
정답: 8개
풀이과정: 선생님! 사과랑 배를 직접 더해보세요 그러면 답이 나와요.

자유로운 영혼임에 틀림없다.


답이 떨어지는 수학 대신 첫째는 국어, 영어, 중국어를 사랑한다. 책을 읽어나 영어 중국어를 배울 때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집중력이나 학습능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수학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큰딸.

나는 아이를 키우며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발란스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스럽다.

C를 B로 맞춰야 하는 것인지 A를 A플러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육아서에서는 초등교육의 핵심은 평균 학습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하고 , 또 어떤 육아서에서는 이제는 과거의 한국식 교육인 '모든 것을 잘하는 아이로 만들기'는 버려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나의 난제인 '수학을 싫어하는 딸'을 풀기 위해

나의 하버드 수학 시간을 읽었다.


공감되는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아이들이 유독 수학 머리가 뛰어나 보이는 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학업 성취도 차이는 절대적인 공부량 차이에 기인한 것이지 우리에게 특별한 수학 유전자가 존재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수학 교육 방식이 옳다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단적으로 이공계 대학교 대학원의 국제 경쟁력 순위나 노벨상 수상 실적만 봐도 알지 않나. 그럼 천재 영재 소리 듣던 그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한국에 유독 수학적 두뇌가 우수한 아이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공부량으로 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커버해버린다는 이야기다. 유독 '한국인'만 '수학'에 강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편협한 우월주의일 것이다.


현행도 버거워하는 큰아이가 '심화 수학 문제집'이라는 거대 장벽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공부량이 뒷받침될 수밖에 없었다. 수학 자체를 싫어하는 딸이 그 많은 시간을 수학에 쏟아부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해서 아이가 심화 문제를 풀게 되면 우리 아이는 수학을 사랑하고 잘하는 아이로 거듭나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의문이다.


미안하게도 수학을 싫어하는 유전자만큼은 남편의 그것이 아닌 아마도 나의 그것일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까지 현행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워했다. 집 앞에 서있다가 우편으로 오는 통지표를 가로채기도 했고 60점짜리 시험지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결정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수학도 외워버리면 된다는 단순한 원리였다. 문제집 하나씩 외워버리는 방법을 썼는데. 이 방법은 나를 내신 100점이나 수능까지는 간신히 이끌어주었다. 다만. 정확히 수능 다음날 모든 수학 공식을 정말로 송두리째 다 잊어버렸다. 재능이 있어 즐기거나. 아니면 노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 게 수학이고, 학문이다.


나의 하버드 수학 시간이 나를 올바른 수학교육의 길로 이끌어주길 바랬지만. 결국 저자는 한국식 수학교육의 희생량인 듯 보였으나 어차피 수학적 자질을 타고났던 사람이었고. 그것이 미국에 가서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내재되었던 힘이 폭발하며 하버드에도 갔고 보스턴에서 스타강사로 성공했다는 해피앤딩이다.


결국 저자의 이야기는 무조건 외워버리는 '나(저자 말고 나)'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고 원리를 깨우쳐야 하지만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처럼 수능과 내신 점수를 올려보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수학을 잘해보겠다는 근원적 목표' 말이다.

내 문제는 그것이었다. 목표가 수학 점수였으니 수능 다음날 다 까먹어 버릴 수밖에.


큰 딸은 영어와 중국어를 아주 잘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미국과 중국에서 온 아이가 떠들어 대는 건 아닐까 가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왜 잘할까? 생각해보면 영어나 중국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닌, 그 언어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수학을 잘하려는 마음이 없는 딸이 수학을 잘하게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에도 하긴 해야 하지만 노력하기는 싫은 난제가 하나씩은 존재하지 않을까?

나에겐 요리가 그랬다. 남들은 가장 창의적이고 즐거운 취미 중에 하나라는데, 나에게는 아침 먹으면 점심을 점심 먹으면 저녁을 걱정해야 하는 '노동'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어도 더디게 늘었다. 그런데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미국에 가기 전 큰 마음을 먹고 한식 요리사 자격증 반에 들어갔는데. 요리의 아주 기초인 칼 가는 법. 다지는 법. 채치는 법. 요리 재료를 다루는 법을 배우며 갑자기 요리 실력이 껑충 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결국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현란한 요리 비법이 아니라 기초였던 것이다.


문득 딸아이에게 부족한 건 수학의 기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버드의 수학 시간의 저자가 말한. 수학의 원리도 내 칼을 다루는 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수학을 잘해보겠다는 의지'와 '칼 가는 방법과 같은 수학의 기초와 원리'

이제 깨달았다! 이제 딸에게 의지만 심어주면 된다!!

그런데 또다시 고민이다. 과연 수학을 잘해보겠다는 그 의지는 어떻게 심어주냐는 말이다.


오늘의 글은 글렀다.

세상 편하게 육아했다는 메거진에 당최 어울리지 않는 썰이다.

오늘만큼은 이렇게 쓰고 싶다.

세상 진짜 열나~ 어렵게 육아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학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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