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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Mar 26. 2022

무례하고 무례하다

어렸을 땐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제법 학식이 있는 사람들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는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문가들도 헛다리를 짚거나 헛소리를 할 때가 많은 걸 보면,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얼마나 더하겠나 싶다.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은 대부분이 인과응보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원인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으로,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음모를 파헤치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90% 이상이 인과응보에 따른 결과인 것 같다. 나머지 10%는 도무지 이해나 해석이 불가한 영역이다.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지의 10%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원인 모를 문제가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짓궂게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일수록 고통은 갑절로 불어나는 경향이 있다. 원인이라도 알면 조금이나마 속이 편할 텐데, 문제는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찾아오지 않는다. 무례해도 너무 무례하다. 90%에 해당하는 인지의 영역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0%에 불과한 미지의 영역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속한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인지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신앙을 비롯한 인간관계의 갈등과 의심과 다툼이 발생한다. 'why me?' "주여. 어느 때까지니까?'라는 한탄도 대부분 이 지점에서 터진다. 욥도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동안, 그새를 못 참고 저마다의 해석을 쏟아놓는다. 욥의 세 친구처럼 말이다. 이들은 모든 걸 자기 경험에 빗대어 '다 안다'라고 하는 사람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코로나 19에 확진되어 자가 격리에 들어간 분에게 문자가 왔다. '지난번에 코로나에 걸리셨을 때 그냥 남의 문제로 생각했는데, 제가 걸려보니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문자 드립니다' 또 어떤 분은 코로나를 심하게 앓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걸려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좀 알 것 같아요'라고까지 하소연하는 걸 보았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프고 나서야 자기와 다른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비로소 거듭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게 찾아온 문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너무나 쉽게 진단하고 해석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난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단정 지었다. 그때마다 확인했던 건, 고통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 섣부른 해석과 충고는 되레 역효과만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나조차 나를 잘 모른다는 걸 모른다. 그래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이것이 나를 가장 잘 아는 분이,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라 걸 깜빡 잊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생각보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직도 못 푸는 수학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이 미지의 영역이 하나님과 나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한다. 곧장 멱살잡이하면서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잠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을 남겨두려는 노력에도 나름의 믿음이 필요하다. 미지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싶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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