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아뜨리 조 May 24. 2016

단 하나의 우산

나의 우산이 되어 주세요

굵은 모래가 섞인 운동장 위로 낯선 손님같은  소나기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비에선 대기에 떠있던 먼지들의 젖은 냄새가 났다. 나는 학교 건물 밖으로 발을 내디딜 엄두도 낼 수 없어  물줄기로 흐려진 세상을 마냥 바라만 보고 서있었다. 어디선가 우산을 든 부모이거나 형제인 사람들이 나타났고 함께 비를 구경하던 아이들은 하나씩 사라져갔다. 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 비가  먼저 멈추면 멈췄지 내 기다림이 멈춰지진 않으리란 걸. 아무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 주지 않으리란 걸 말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생이  내게  쉽게 호의를 베풀진 않을 거라는 걸 알아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빗속으로 뛰어드는 것 밖엔 없었다. 아무도 춤을 청하지 않는 무도회에 벽화처럼 마냥 서있기는 싫었다.  나는 비록 등이  젖어 서늘해질지언정 차가운 빗줄기에 두 뺨을 얻어 맞더라도 그 운명과 맞서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로도 여러번 그런 순간들과 맞닦드리곤 했다. 내게만 허락된 단 하나의 우산인 너를 만날때까지.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날엔 아무도 마중 나와 주지 않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떠오릅니다. 추위에 몸을 옹송거기고 있던 작은 아이의 뒷모습도 함께.  

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그런 혼자인 순간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유도 모른 체 친구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게 될 때도 있었고, 둘이 필요없을 만큼 믿었던 단 하나의 친구가 등을 돌려 혼자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외롭지 않은 척 혼자라서 자유로운 척 했지만 실은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주길 찾아와 주길 간절히 기도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나만 초대 받지 못한 파티가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에 금이 그어지던 순간들.  세상이 유독 내게만 차가웠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세계를 인식하던 내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며 나만 외롭거나 고독한 건 아니었단 걸 그때의 작은 소녀는 알지 못했던 거지요. 그리고 외로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단 하나의 우산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나의 우산이 되어주길 꿈꿨을 뿐 나를 적시는 빗줄기를 스스로 막아야 한다는 걸 그렇게 강해져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선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어쩌면 녹슬고 구멍난 남색 우산이 부끄러워 씌워주지 못한 누군가가 내 등 뒤에 서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 어느 비오는 날엔가 용기가 없어 비 맞는 누군가를 내가 외면했던 것처럼.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만나서 구멍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에 함께 웃을 수  도 있지는 않았을까요?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 비오는 지구별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는 것을요. 각자 구멍난 우산으로 스스로를 지키기도 하고 가끔은 그 속에서 함께 소박한 온기를 나누기도 한다는 것을요. 영원하지 않은 그 짧은 여행동안 내 우산을 스쳐간 이들의 추억이 내게 다시 비를 만날 용기를 준다는 것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빗속에 뛰어든 그 작은 소녀인 내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너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우산이라고. 비록 알록달록하지 못하고 남루하지만 그 모든 비바람 이겨낸 네가 최고의 우산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사막의 밤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