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는 모든 것들은 그토록 아름다운지.....
해질녁의 산책길은 여름날의 아이스커피 만큼이나 격한 위로의 숨결이 숨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천변길이 자전거와 산책로로 잘 구획되어 있다. 산책길에선 언제나 쌩하고 지나가는 자전거 부대를 만날 수 있다. 나는 그 부대와는 반대로 민달팽이처럼 느린 산책길에 나선다. 주인공은 슬로우 모션이고 배경은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왕가위 영화에 출연한 기분이랄까.
산책하는 동안 하늘은 변심한 애인처럼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해간다. 아무렇게나 붓칠을 해놓은 것 같은 헐거운 구름들 사이로 붉은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늘이 물들어 갈 때면 나는 깨닫곤 했다. 내 마음은 늘 서향이었다는 것을. 왜 지는 모든 것들은 그토록 아름다운지......
그 시간은 하루종일 또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라진 것들이 내게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미안한 듯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무심한 듯 말하려 했지만 왠지 자꾸 목이 메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 버렸고 나머지 몇 명은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너무 더웠어. 1994년 이후로 처음이라는데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아. 이런 더위는 처음인 것 같거든."
여기 이곳에서 내가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노을만큼이나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럴때면 이 생과 저 생을 이어주는 듯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또 다시 걷다 보면 붉은 하늘에 먹물처럼 또는 세월처럼 어둠이 물들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휴대폰에서는 지워지고 없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살아서 벨소리를 울려줄 이들을 그리워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주 마음껏 말이다.
산책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내 생의 사람들에게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이별하게 될 그래서 더 애틋한 그들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