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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아뜨리 조 Mar 30. 2016

소금사막의 밤 6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

내 생에 다시 이런 고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불과 십 분 전의 나도 알지 못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 선혜씨와 그곳에 가보고 싶어요. 원래 그곳은 11월부터 2월에 가야 해요. 건기에는 모래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지만 우기인 겨울에 가면 물이 고여 있어서 거대한 거울로 변하거든요. 그래서 그곳을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특히 비가 그친 밤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하늘에도 땅에도 함께 있기 때문에 우주에 떠있는 것 같다고 해요. 그곳의 밤을 당신과 함께 보고 싶어요. 거기에서 라면 제 아들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선생님...... 그건 너무 앞서가는 거잖아요."

그와 나는 잠깐 웃었던 것 같다.

 우리가 아닌 남들이 들었다면 닭살이 돋는다고 했을 만한 대사였지만 나는 그에게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남녀가 유치해질 수 있다는 건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축복이었다.


 "우와 기선혜! 정말 정말인 거지! 어쩐지 이번엔 뭔가 있으려나 했다니까. 내가 그 목련꽃 하나 딸 때마다 니 짝이 나타나 주길 기도했다니까"

 김영우 얘길 들은 경혜는 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평소엔 별 내색 안 하더니 그의 얘길 듣더니 나보다 더 오버를 했다.

 "첫 단추가 정말 중요하니까. 너 정말 꽉 잡아야 한다."

 몇 번의 데이트 끝에 그와 첫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말에 경혜는 거침이 없었다. 퇴근길에 그와 나는 짧은 데이트를 했다.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그의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는 진짜로 짧은 데이트였다. 우리는 좀 더 긴 시간을 함께 있고 싶었고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수지를 할머니네로 보내고 가방을 싸는 동안 유리로 만든 길을 걷는 듯 불안하기도 했지만 입꼬리는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묵게 된 펜션은 마당 벤치에 앉아서도 바다가 보였다. 올레 5길이 펜션의 마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펜션에 도착한 후 우리는 짐을 풀고 난 후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마냥 바다를 보고만 있었다.

 "혹 똑같은 길을 가기 위해 걷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도 있어요."

 나는 어둑해진 바다를 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광경에는 몇 할 정도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러게요. 실패를 겪고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 모두 대단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선혜 씨를 알아가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볼이 붉은 소녀였을 때는 식욕이 왕성했었는지, 대학생일 때는 긴 생머리가 어울렸는지...... 제 호기심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나도 그랬다. 누구를 봐도 기능인으로만 보이던 내가 다시 사람이 궁금해질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어둡기만 한 밤바다 위로 등대의 가느다란 빛이 그와 나의 마음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바다를 향한 데크에서 함께 고기를 구웠고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우리는 만난 지 오래된 친구처럼 또는 부부처럼 편안해졌고 그렇게 함께 밤을 보냈다. 내면을 쓰다듬듯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누었고 서로를 향해 몸을 열었다. 그 밤이 어땠느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좋았다'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좋았느냐고 묻는 다면 아주 많이라고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내 잠을 잤고 나는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자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언뜻 소년이 보이는 듯했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그의 시작을 포함한 역사를 한꺼번에 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의 손을 내게 온 우주를 한 번 더 세게 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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