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치앙마이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니!’
선선한 바람, 한적한 도로, 원하는 곳에 바로 갈 수 있는 자유로움. 스쿠터를 타면서 나도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운전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였다. 속도 조절이 안되거나 신호를 잘못 보고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30대를 한참을 넘겨서야 면허를 땄고 주민등록증처럼 신분증으로 가지고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스쿠터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고 손잡이를 가볍게 돌려 속도를 내고 있었다. 브런치 카페 앞에서 천천히 스쿠터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스텐드를 내린다. 헬멧을 벗어 백미러에 걸어두고 한 발로 자연스럽게 오토바이에서 내려온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도 괜찮을까? 한 달 살기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여자 혼자 스쿠터를 타고 한 달을 여행했다는 유튜버를 봤다. 마켓에 가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저거다! 이곳저곳 다니려면 스쿠터가 편하겠는걸. 매번 택시를 부르면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들어가니까 시간 절약도 되고. 스쿠터를 타야겠다.' 하고 마음먹은 게.
치앙마이에서 스쿠터를 타려면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다. 운전면허가 있어도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 올드타운 근처에서 종종 검문이 있고, 검문에 걸리면 국제면허증을 보여줘야 한다. 2종 소형 면허를 땄다는 도장이 없으면 벌금이 500바트다. 지금 환율이면 2만 2천 원 정도인데, 한 끼 식사가 100바트를 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5번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내일 예약될까요? 2시에 방문할게요."
가까운 곳에 있는 오토바이 연습장에 전화했다.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까 고민도 했다. 학과 교육 3시간, 장내 교육 10시간... 읽자마자 까마득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 나는 빠른 취득을 원했고 학원 등록비 50만 원도 아끼고 싶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2종 소형면허 2시간 연습으로 합격!’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하루 종일 선배들의 경험담을 수집하고 탐독했다. 글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없던 자신감도 만들어준다. '이 사람들도 했는데,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얻었다.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바이크 연습장으로 간 일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가 맞나? 지하철 9호선의 마지막 정류장인 중앙보훈병원역에서 내렸다. 주변엔 좁은 길과 정비되지 않은 도로들이 있었다. 골목을 잘못 들어가서 뱅글뱅글 돌다가 ‘바이크스테이션’ 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찾았다. 오토바이 대여도 해주고 연습도 할 수 있는 매장이었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내부에 사람은 없고 수십대가 넘는 오토바이만 일렬로 서있었다. 장엄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기요, 안녕하세요."를 몇 번 외치자 직원분이 나왔고 여자 혼자 온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여행 가서 오토바이를 타려고요. 면허가 필요해요. 타본 적은 없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간단한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 서명을 하고 오늘 탈 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토바이 이름은 아퀼라였다. 검은색 몸통에 의자가 두툼하고 어딘가 듬직해 보였다. 유튜브에서 본 것보다 크기도 컸다. 내가 움직일 수는 있을까, 거대한 바위 같은 오토바이를 잘 제어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일단 핸들을 잡고 좌석에 먼저 앉으세요. 발로 스탠드를 뒤로 넘기시고요. 열쇠를 돌리세요. 왼쪽 클러치(손잡이 위에 있는 레버)를 잡고 오른쪽 손잡이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려요. 그리고 클러치를 조금씩 놓으면 앞으로 나가요. 절대 빨리 놓지 말고 천천히 부드럽게 놓으세요. 클러치를 빨리 놓으면 시동이 꺼집니다."
그가 하는 말을 온 신경을 집중해 듣기 시작했다. 시범을 보여준 후 한번 타보실래요, 하고 핸들을 넘겼다. 손이 덜덜 떨렸다. 시동을 이렇게 걸었었나 몇 번 방황하며 순서를 다시 익히고 나서야 오토바이가 조금씩 나가는 걸 느꼈다. 왜 이렇게 빠르지? 겁이 나서 브레이크를 확 잡았다. 급정지로 몸이 덜컹 움직였다.
"브레이크를 잡을 땐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잡으세요. 달릴 때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지 말고, 클러치를 잡아 주세요. 속도가 줄어들어요. 그렇게 속도를 줄였다가 세울 때 브레이크를 잡는 거예요. 갑자기 브레이크부터 잡으면 몸이 튕겨나갈 수 있어요."
몸이 튕겨나간다고? 지금 다치면 출국도 못한다. 안전하게 타야 한다.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면서 정지하는 법을 먼저 익혔다. 코스는 그다음이다. 자전거로는 어디든 거침없이 갔었다. 사람이 많아도, 경사가 높아도, 길이 좁아도 자전거 운전만큼은 무사고 30년 경력이다. 오토바이도 다르지 않을 거야, 되뇌며 연습장을 돌아다녔다. 천천히 하면 다 할 수 있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그런데 이 오토바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거니…
2종 소형 면허는 ‘ㄱ’ 자로 꺾는 굴절코스가 먼저 나온다. 가이드 선 안에서 조심스럽게 커브를 틀어야 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탈락하는 이유의 90%는 이 코스에서 선을 밟기 때문이다. 전체 코스에서 선을 두 번 밟으면 바로 탈락이다. 한 번만 밟고 지나가면 괜찮지만 당황하기 때문에 두 번째 커브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탈락하면 3일 후에야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없다.’
‘다음 주 목요일에 출국이다. 첫 시험에 바로 합격하지 않으면 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는 못 타는 거야.’
한 시간 내내 기본 코스를 돌다가 잠깐 쉬었다.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중심을 잡으니 두꺼운 자전거 느낌이 났다. 여전히 시동을 걸고 끄는 건 자연스럽지 않아도 주행은 익숙해졌다. 배움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다. 그 지점을 넘으면 익숙한 시기가 온다. 그때까지는 반복이 최고다.
쉬면서 유튜브로 주행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봤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다. 연습장에도 핸들을 돌려야 하는 위치를 그림으로 그린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저대로만 꺾으면 되는데, 그게 안된단 말이야.' 넘어지지 않는 선에서 핸들을 빨리 돌리는 부분이 익숙해져야 한다. 첫 코너를 돌면 다시 반대로 돌릴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적절한 타이밍, 적절히 몸의 무게 중심을 움직이기, 시선은 바닥이 아닌 앞을 보고 다음 코스를 예상하기, 뒷바퀴가 닿지 않도록 최대한 라인 끝에 붙기. 수십 번 머릿속으로 트레이닝을 한 후에야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아까보다 훨씬 나은데요?”
그의 말에 광대가 올라갔다. 50바퀴만 돌고 가자. 몸에 최대한 감각을 익히고 가자. 언제 돌아도 선을 밟지 않고 자연스럽게 코스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2시간을 꽉 채워서 연습했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도 시험 당일에 다른 곳에서 1시간만 더 연습하고 시험을 치르자고 생각했다. 치앙마이 출국 4일 전까지 유튜브 영상 알고리즘에는 온통 2종 소형 오토바이 시험 준비에 관한 내용이 떠있었다.
시험 날, 용인에 있는 운전면서 시험장 근처에 예약해 둔 연습장에 갔다. '화성인라이더스 2호점'이었다. 처음에 갔던 연습장보다 훨씬 넓다. 여기 직원분도 여자 혼자 온 게 안 믿기는지 여러 번 나에게 연습하러 온 것이 맞냐고 물었다. 사장님께 전화해서 예약 내용을 다시 확인하겠다고까지 했다. 사장님은 내가 여성인 줄 알았다면 2호점이 아닌 1호점으로 오게 했을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긴급상황에 옆에서 봐줄 직원들이 1호점에 많고 본인이 직접 합격하는 법도 알려줄 수 있어서라고 하셨다. 여러 얘기를 종합해보니, 모두 나를 걱정해서 해주시는 말씀이었다. 한번 연습을 해봤고 괜찮다고 했다. 2호점이 시험장과 가까우니 효율적이다. 효율적인 건 포기할 수 없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오토바이를 넘어뜨린 건 정확히 그 대화를 하고 10분 후였다. 앞에서 달리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속력을 줄였고 따라가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급정지가 되어 오토바이를 놓쳤고 나는 튕겨나갔다. 사장님 말씀이 맞았다. 한번 타봤어도 초보는 초보였던 거다. 멀리 깨진 백미러가 보였다. 직원이 달려와서 다친 곳이 없냐고 물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오토바이만 다쳤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직원분에게 오토바이 괜찮을까요? 백미러 어떻게 하면 되죠? 하고 물어봤다. 사장님과 상의하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미안해 오토바이…
‘후, 지금 안 겪어 봤으면 안전거리에 대한 감도 없었겠네.’
오토바이도 충분한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실전이었으면, 도로에서 넘어졌으면 어떻게 할 뻔했는지. 생각만 해도 손이 떨린다. 직원이 다가왔다. 백미러만 수리하면 되겠어요. 5만 원인데 3만 원만 받으라고 하시네요. 빛의 속도로 계좌이체를 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돌발 상황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나중에도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50바퀴를 더 돌았다. 이제야 모든 코스를 자신 있게 돌 수 있게 됐다.
“100번 잘해도 시험장에서 한번 못해서 떨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100번 못해도 한번 잘해서 붙는 사람들도 많아요.”
직원분의 말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정신력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몸은 이미 코스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방심하는 순간 실수는 바로 나온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찰나에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일, 심장이 빨라져도 호흡을 고르고 손에 힘을 덜어내는 일. 오늘의 연습은 오토바이를 타는 방법과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훈련이었다. 이건 시험을 위한 훈련이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연습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시험을 보러 가게 되는데...
1. 바이크스테이션
중앙보훈역 근처에서 광주시로 이전했어요.
2. 화성인라이더스 1호점 : 사장님이 합격 꿀팁을 많이 알려주시기로 유명해요.
3. 화성인라이더스 2호점 : 용인운전면허시험장과 가까워요. 혼자 연습할 때 좋아요.
주소: 경기도 용인시 보라동338
비용 모두 동일
- 1시간: 6만 원
- 2시간: 9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