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같은 시간에 도착한 사람들

PART 4. 훈련을 완성한 사람들

by 수련의기록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 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대만어 할 줄 아세요?”


아뿔싸. 태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뜬금없이 대만어를 묻는 질문을 했다. ‘앗, 이게 아닌데.’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이다 보니 태국어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당황한 그의 얼굴을 보며 내 머릿속도 하얘지고 있었다.


“하하하, 태국어를 말한 거구나. 태국어는 할 줄 몰라. 무슨 일인데?”

“이 장소에 찾아가야 하는데, 문을 닫은 것 같아. 자동응답 안내 멘트가 태국어로만 나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는 싱가폴 국적이었다. 부스스한 머리, 빛바랜 초록색 반팔, 회색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내 눈에는 태국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처럼 보였다. 일 때문에 치앙마이에 왔고 6개월을 거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보다 한 달 먼저 치앙마이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문득 '이것도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신저를 하냐고 물어봤다. 라인을 사용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어플을 켜고 그의 연락처를 등록했다.


“이름이 뭐야?”

“나는 쏭이라고 해. 송중기랑 같은 쏭이야. 송중기 알지?”

“송중기를 알아? 신기하다. 내 이름은 케이트야. 어제 한국에서 왔어.”

“일 때문에 왔어? 휴가야?”

“휴가로 왔어. 한 달 있다가 돌아갈 거야.”

“어쩐지 관광객처럼 보이더라.”



나보고 프레쉬해 보인다고 했다. 아직 햇살에 타지도 않았고, 현지인스럽지 않은 옷을 입고 있어서라나. 자기는 한 달이 지나니 이제 꾸밀게 없어졌다고, 현지인처럼 보였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중기부터, 프레쉬라는 말에, 나는 긴장을 풀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그의 유머러스한 친절함이 좋았다. 알고 보니 쏭은 애니휠이라는 공유자전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운영을 담당했고 싱가폴에서 근무하다가 태국 비즈니스가 성장하면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부터다. 초록색 자전거만 보면 그가 생각났다.





완벽했던 첫번째 식사와 카페.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프레쉬 했나?




“내일 점심에 밥 먹으러 갈래? 맛있는 집 아는데.”

“어딘데? 가볼래!”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밥은 내가 살 생각이었다.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어서 만나는 것도 쉬웠다. ‘토요일 1시, 건물 1층에서 만나자.’ 한마디면 됐다. 다음날 건물 입구로 내려가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냈어?” 어색한 듯 인사를 하고 택시를 탔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Li Kai라는 음식점에 갈 거야. 싱가폴 스타일의 닭고기 덮밥을 파는 곳이야.” 그는 내가 꼭 먹어봐야 한다며, 싱가폴 보다 맛있는 곳이라고 했다. 도착해 보니 깔끔한 실내와 밖이 훤히 보이는 창이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삶은 닭고기랑 오이무침이 맛있어. 여기에 찰밥 하나랑 볶음밥 하나를 시키자. 매운 소스에 찍어먹으면 맛있으니까 그것도 달라고 할게. 음료는 어떤 걸로 마시고 싶어?”


첫번째 식사에서 그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쏭은 데이트 코스를 짤 줄 아는 사람이다. 같이 온 사람에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 거리를 만들지 않았고 메뉴들의 적절한 조합까지 추천해 주었다. 마실 것은 무엇을 원하는지, 추가로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또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직원들에게 바로 물어봐주는 모습에서도 배려가 묻어 나왔다. 우리는 어제 만났다. 많은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마음을 열고 있었다.


식사는 완벽했다. 닭고기는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으스러졌다. 어떻게 닭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냐고 온몸에서 물음표가 솟아올랐고, 간도 딱 맞는다며 환호했다. 향신료 맛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먹기에 불편한 점이 없었다. 매콤한 소스도 짜거나 너무 맵지 않고 조화로웠다. 찰밥과 함께 먹으니 요리왕 비룡의 한 장면처럼 배경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리액션이 많은 편이다. “오 마이갓, 와우, 딜리셔스”를 아낌없이 외쳤다.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맛이었으니까. 그런 나의 리액션을 쏭은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리액션이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재밌다면서. 여행온 첫날부터 이렇게 행복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건가. 태국음식은 아닌 것 같지만 무슨 상관일까. 나는 이미 행복에 물들어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쏭이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바로 앞에 인스타에서 유명한 커피집이 있다며 가자고 했다. 이 사람 정말 매력적이다. 커피 코스까지 짜왔다. 이때부터 그가 데려가는 곳은 두말 않고 따라다녔다. 카페는 일본식 정원 컨셉의 넓은 장소였다. 주문하는 바는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홀에는 나무로 된 탁자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주변으로는 정원이 둘러싸고 있었다. 정원 옆으로 걸어가면 좌식으로 된 테이블도 있어서 잠깐 누워서 쉴 수도 있었다.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들이 넘쳤다. 왜 인스타에서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이곳에 잠깐 누웠다가 30분을 잠들었다...




“여기 정말 예쁘다. 어떻게 이런 데를 알고 있었어?”

“어제저녁에 인스타로 열심히 검색했어. 구글 지도로 식당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고.”

“정말? 데려와줘서 고마워!”


감동하면서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한국이라면 이런 곳에서의 커피는 만원이 훌쩍 넘겠지만, 낮은 가격에 또 감동했다. 시그니처 메뉴도 많다. 직원분께 추천해 달라고 하니 "여기는 말차워터가 유명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말차에 우유를 섞은 것도 아니고 물만 넣은 건데 맛이 있을까? 이때 아니면 언제 마시겠냐며 그걸로 달라고 했다. 쏭은 카페라떼를 마셨고, 우리는 코코넛 빙수도 시켰다. 달달하게 절인 코코넛이 토핑으로 올라가 있는 빙수였다. 셋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말차워터였다. 말차를 곱게 갈아 물과 섞은 맛인데, 쌉싸름함과 고소함이 절묘하게 느껴졌다. 달지 않아서 좋았다. 또 리액션이 나왔다.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면 심리적인 거리도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늘이 잘 보이는 좌식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고 음료를 마시며 잠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다, 처음 만난 싱가폴 친구와의 점심 데이트 자리에서 30분 동안 낮잠을 잤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일본식 카페에 와서 편안하게 숙면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

갑자기 번뜩 눈이 떠졌다. 내 옆에 오늘 처음 밥을 먹은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잠이 들었나 봐?" "응 너 정말 잘 자더라. 그래서 나도 낮잠 잤어. 하하. 피곤했나 봐." "우리가 많이 먹긴 했나 보네. 잠이 들고 말이야. 햇살이 너무 좋다." 애써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도 웃었다. 어색함이 살짝 스쳐지만 그래도 뭐 어때, 그만큼 편했다는 증거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는 이때부터 쏭을 베스트 프렌드처럼 느꼈던 거 같다.

쏭과 붙어 다닌 날은 셀 수 없이 많다. 나에겐 치앙마이에 먼저 온 선배였고, 다녀온 곳들 중에 베스트만 추천해 주는 최고의 친구였다. 그의 회사 근처의 로컬 레스토랑부터, 항아리 삼겹살, 굴튀김, 꼬치구이, 초밥, 미슐랭 태국 음식점, 햄버거, 피자, 초밥, 망고, 판단 디저트, 로띠, 수많은 커피집까지 내가 간 맛집의 반 이상은 그의 소개였다.





점심에 만나고, 저녁에 만나고... 하루에 두번씩 만난적도 많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친구는 없었던 거 같다...ㅎㅎ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방콕과 싱가폴로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갔을 때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치앙마이로 왔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친구의 가족을 만나 식사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한 명의 인연이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만나서 이만큼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여행의 진짜 묘미는 이런데 있나 보다.

쏭이 아니었다면 타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새로움 속에 느껴지는 외로움도 깊었을테고. 치앙마이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마주쳤던 사람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그들의 따스함이 이곳을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고 집에 오기만 하는 일상을 반복했었다. 마침 고르고 골라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난 그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순간에 접점이 생겨 서로를 인지하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까. 그중에서도 인연을 아끼고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 소중한 인연이 나의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쏭과 같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쏭 덕분에 나는 또 떠날 용기가 생겼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갈 마음이 생겼다. 우리의 다음 만남은 한국이 될지, 싱가폴이 될지, 치앙마이가 될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쏭에게.

치앙마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중에 네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거야.

현지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너를 만난 건 여행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어.

항상 나를 배려해주고 챙겨줘서 고마워.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기들 소중히 간직할게.

네가 한국에 오게 되거나, 내가 싱가폴에 가게 되면 꼭 연락하자.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며 지내고 있을게.


건강히 잘 지내.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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