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훈련을 완성한 사람들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 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지내고 계신가요~?’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메시지 알림이 떴다. 같은 숙소에 살고 있는 소연님이었다. 쏭을 만났던 날 아침, 숙소 입구에서 도움을 요청하다가 한 명의 친구를 더 만들었고, 혹시 몰라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그녀는 나보다 닷새 먼저 치앙마이에 도착했고, 나와 마찬가지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들과 일부러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말이 조금 어긋나도 외국인들과 부딪히며 지내는 쪽이 더 여행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인의 마음은 한국인이 가장 빨리 알아본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정서,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게 이렇게 편안한 일이었구나 싶어졌다.
“소연님, 점심 같이 먹을래요?”
“저 지금 집 앞 식당이에요. 음식 막 나왔는데, 기다릴게요.”
집에서 식당까지는 걸어서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태국인 사장님이 빠르게 음식을 내주었고, 우리는 처음으로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어색함은 잠깐이었다. 여행지에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난 선물 같은 인연이다. 서로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연님은 한국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일 가게를 열고 닫고, 직원들을 챙기며 쉼 없이 지내다 문득 쉼표를 찍는 시간을 갖고 싶어 졌다고 했다. 가게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아무 계획 없는 여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이번 여행에서는 꼭 해야 할 것도, 꼭 가야 할 곳도 없다고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마음 가는 대로 걷다가 예쁜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것. 그게 전부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여행을 떠올렸다. 나는 하루의 중심에 운동을 두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달리고, 요가하면서 몸을 쓰는 일정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똑같이 치앙마이에 와 있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꽤 달랐다.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그런 방식도 있구나 싶었고, 나와는 다른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앙깨우 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노을이 호수 위로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말수도 줄어들었다. 걸음도 함께 느려졌다. 늘 뛰러만 오던 곳이었는데, 걸어보니 풍경이 이전보다 오래 눈에 머물렀다. 다른 사람의 여행 방식에 속도를 맞춰보는 일도 의외로 신선했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님만해민을 걸어서 다녀온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치앙마이는 생각보다 작은 동네였고, 서두르지 않을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곳이라는 걸 소연님 덕분에 알게 됐다.
며칠 뒤, 할로윈이 다가왔다. 쇼핑몰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집 앞에서 만나 가볍게 걸어 나갔고, 쇼핑몰 앞 포장마차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정말 예고도 없이, 억수같이.
“어? 비 온다.”
“와, 장난 아니다. 갑자기 이렇게 쏟아진다고요?”
나는 통구이 오징어를 사러, 소연님은 갈비를 사러 갔다가 그대로 갇혔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몰려들었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10분이 넘게 혼자 비를 피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인이세요? 비가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계속 쏟아지네요. 여행 오신 거예요?” 자연스럽게 몇 마디를 나누게 됐고, 그들은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됐다. 형제끼리, 배우자까지 총 8명이 함께 왔고 그중 2명은 치앙마이에 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맛있는 걸 먹고 마사지를 받으며 쉬러 왔다고, 마야몰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갔는데 너무 맛있었다는 얘기까지 나누게 됐다.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목적으로 이 도시에 와 있었다.
그 사이 메시지가 왔다.
‘어디 계세요?’
‘저는 오징어집 처마 밑이에요. 빗줄기가 약해지면 그냥 맞고 가야겠어요.’
‘좋아요, 저는 갈비집 사장님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가게 안에 있어요.’
비는 결국 그치지 않았다. 잠깐 약해진 틈을 타 우리는 다시 만났고, 머리부터 신발까지 다 젖은 모습이 웃겨서 서로를 보며 웃어버렸다. 운동화가 젖어서 답답했다. 소연님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슬리퍼 신고 올 걸 그랬어요.”
"옷은 똑같이 다 젖었는걸요. 샤워하고 나왔는데, 하하하.”
우리는 셔츠를 머리 위로 올려 쓰고 빗속을 걸었다. 버스킹 공연을 보며 저녁을 먹으려고 했던 계획도, 쇼핑도 모두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아까 비 피하면서 다른 한국 사람들 만났어요. 8명의 가족이 함께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얼마 전에 다른 여행객을 만났는데, 그분은 매일 다른 재즈바를 간다고 했어요. 여행이 다 다르네요, 정말.”
우리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여행이 있다는 것. 가야 한다는 곳에 가지 않아도 되고, 유명한 맛집을 모두 따라다니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운동으로 하루를 채우고, 누군가는 걷고 쉬고 쓰는 것으로 여행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들이 정해둔 코스가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여행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이 말하는 순서와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각자의 속도와 선택으로 충분히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매일 붙어 다니지는 않았고, 각자의 여행을 계속해 나갔다. 누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굳이 약속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 때 혹은 오늘 하루를 혼자 보내기엔 조금 아쉬운 날에 자연스럽게 다시 만났다. 연락을 자주 주고받은 건 아니었지만, 그 사이가 어색해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느슨하게 이어졌기 때문에, 마음에 더 오래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소연님을 떠올리면 늘 치앙마이가 함께 떠오를 것이다. 각자의 속도로 걷다 잠시 마주쳤던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