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사는게 바쁘다보니 눈 앞에 닥친 일만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 별로 없다.
연구 면에서도 지금 당장 코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다보니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은 뒤로 미루어 버리고 만다.
돌아보고 내다보는 일은 게을리하면서 조바심은 내고 있다. 조바심을 내며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과연 내게 행복이란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나는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행복의 근원이 외부에서 온다면 그 행복함이라는 기준이 나의 의지가 아닌,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 같다. 행복은 내 안에서 찾아야 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 그게 뭘까? 답을 찾는 일은 역시나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다만 오래 전, 꽤 오래 전 생각이 문득 스치었다. 술을 마시며 친구들에게 설파하던 개똥철학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반가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소주 한 잔하며 회포를 풀고 기쁜 마음으로 그 술 값을 낼 수 있는 삶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나이를 먹고나니 알겠다.
1. 우연히 반가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를 기억해주고 반가워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간의 인생을 그리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는 뜻. 최소한 그 친구에게만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뜻.
그리고 나의 외모가 못알아볼 정도로 그리 망가지지는 않았다하지만 현실은 넓어진 이마는 뜻거울 속엔 왠 아저씨.
2. 소주 한 잔하며 회포를 풀다
미리 예고된 약속도 아닌데 술 한잔 하고 집에 좀 늦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부인께서 그것을 허락해주셔야 하는 것.
꾸준하게 집에 잘 해왔거나 (그럴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있었다는 뜻) 부인께서 대인배이셔야 가능한 이야기혹은 가족에게 이미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거나ㅠ.
3. 기쁜 마음으로 술 값을 내다
사실 소주 한 잔 해봐야 얼마나 나오겠나 싶겠지만
한정된 유부남 용돈 혹은 빠듯한 가정경제를 생각하다보면 기쁜 마음으로 주저하지 않고 술 값을 내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더치페이를 할까 고민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내기로 맘 먹었더라도 소주와 계란찜, 닭똥집 같이 비싸지 않은 메뉴를 주문하면서도 머릿 속엔 계속 이게 총 얼만가를 셈하고 있을 수도 있다.
기쁜 마음으로 술 값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내 벌이가 꽤 괜찮거나 부인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뜻이다.
한 때는 저 행복한 삶의 기준이 그냥 철 없던 시절의 허세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것을 먹는가 등등이라고 생각해던 때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 돌아보니 그 아주 오래전 생각은
낭만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실적인, 아주 훌륭한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행복한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