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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방끈수공업자 Jul 25. 2022

자기 객관화, 그리고 연구

메타인지와 연구와의 상관관계

메타인지라는, 제게는 조금 어려운 심리학적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가 꽤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어서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자신의 사고 과정에 대해 인지하는 고차원의 사고, 좀 더 쉽게는 생각하고 있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바로 자기 객관화가 메타인지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는 불필요하게 자존감을 낮춥니다. 반면 과대평가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양 쪽 다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 객관화는 연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심리학 이론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 객관화와 관련된 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학부 연구생으로 지내던 대학 4학년 때, 소가 뒷걸음칠치다 쥐잡은 격으로 얻은 작은 성과 하나가 자신감을 가득채워줬습니다. 좋은 논문이 완성되는데 아직 학부생인 제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죠. 교수가 된 지금 돌아보면, 교수님과 선배들이 많이 도와줘서 나온 결과이고, 교수님께서 저를 적재적소에 잘 써주시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 입니다. 그랬던 것을 저 혼자의 힘으로 잘 해냈다고 믿었으니 자기 객관화는 빵점이었지요. 물론 자기 효능감은 크게 느낄 수 있었고, "연구의 재미"라는 것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긴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의 영점 조절이 잘 안된 채로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당연히 진짜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높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기본기와 실력이 많이 부족한 저의 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초라한 저를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자존감도 바닥을 쳤죠. 하지만 한 학기, 두 학기 보내다보니 그 괴로움도 줄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지 괴로움에 무감각해져가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그러기도 했겠지만 자기 객관화가 조금씩 된 덕에 훤히 보이는 제 바닥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바닥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성장과 함께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박사과정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석사 디펜스를 나름 성공적으로 하고 미국 대학원 어드미션도 받아 뽕(?)이 차 있었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이번에도 높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길은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인지, 박사를 마친 후엔 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포닥을 하면서 천상계의 노력형 천재들을 만나다보니 그 틈바구니 속에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남은 것 중에서 그나마 제가 두각을 드러내고 잘 할 수 있는게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연구를 시작할 때 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여러 현실의 벽을 만납니다. 그 중 일부는 노력해서 넘을 수 있지만 많은 것들은 발버둥쳐도 넘을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 번 그 벽 앞에서 통곡을 해봤던 저는, 이제 그런 벽을 만나면 저 벽이 내가 넘을 수 있는 벽인지 아닌지 신속하게 판단부터 합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이 단계부터 어렵습니다. 만약 노력해서 넘을 수 있는 벽이라면 그때부턴 그 벽을 넘는데 최선을 다해 집중합니다. 넘을 수 없다고 생각되면 즉시 우회로를 찾는데 집중합니다. 


분명 그 높은 벽도 쉽게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연구자들은 거대 담론을 이끌고, 혁신을 이뤄내며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제가 그 극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방법은 잘 정립된 자기 객관화였습니다. 모두가 대단하게 주목받는 연구를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작은 연구에서도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렇게 목표를 조정하고 방향을 바꿔가면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나쁜 의미로 쓰이는 "정신승리"라는 단어가 딱 맞지요. 하지만 저는 "정신승리"야 말로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관련된 글을 써보겠습니다.)


"연구를 잘 한다"라는 것의 의미를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거기에 몰입하는 "선택과 집중, 집중과 반복"이 깊이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비교적 일찍 깨달았기에 선택을 잘하기 위한 훈련을 많이 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무턱대고 높은 목표를 세우지 않음으로 인해 작은 성공들을 자주 이뤄낼 수 있었고 그 성공들을 통해 얻은 성취감(보상)이 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를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쌓인 자신감은 용기와 동기부여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때로는 큰 도전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부터 보상을 얻고 (Exploitation) 이를 바탕으로 때로는 평소 안 해본 큰 도전도 해볼 수 있는 (Exploration) 선순환이 만들어지더랍니다.




오늘 이 글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을 결론 짓자면---(1) 연구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2) 객관적 시선을 갖기 위해 가장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벽에 많이 부딪혀보고 내가 넘을 수 있는 벽이 어떤건지 감별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가 되겠습니다. 요약하면 "많은 경험을 통해 메타인지를 높이자"가 됩니다. 


어줍잖은 이야기지만 제 경험을 공유드렸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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