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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모두 즐기고 싶은 곳, 지리산(3)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by 지우진

이전 다른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평일에는 보통 새벽 2시반에서 3시 사이에 기상한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자기계발과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하는 것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계발을 하는 게 나의 생체 리듬에 더 적합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기상 시간을 바꾼 건 아니다. 새벽 6시에서 30분씩 앞당기면서 몸을 적응시켰다. 벌써 3년이 넘었다. 이제는 전날 평소보다 늦게 잠들어도 이 시간대에 잘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은 일찍 잠들어서 평균 수면 시간을 맞추려고 한다. 일주일 중 5일을 이렇게 보내면 금요일 밤에 즐기는 여유가 정말 달콤하다. 토요일에 여행을 가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푹 잔다. 기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잘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 금요일 밤이 더욱 즐거워진다.


여행을 가면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보통 잘 자지 못한다. 주변의 소음으로 잠을 못 자는 건 아니다. 대신 베개와 매트리스에 예민하다. 유난히 베개가 높거나 낮은 숙소가 있다. 너무 푹신하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하다. 매트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아예 바닥에서 잘 때도 있다. 하지만 바닥에서 오래 자면 허리가 불편해서 결국 잠을 설치게 된다. 여행가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다음 날 일정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인다. 여행지가 좋아도 잠자리가 불편했다면 다음 번에 다시 가기가 꺼려진다.


지리산에 여행와서 이 펜션에서는 단 한 번도 못 잔 적이 없다. 늘 숙면을 취한다. 다음 날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서 개운한 게 아니라, 일찍 일어나도 개운하다. 밤늦게 잠들었는데도 아침이면 푹 자고 일어난 날처럼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곳에는 침대가 없어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 그래도 뻐근한 곳이 없다. 베개의 높이도 나에게 딱 맞다. 목이 불편하지 않다. 잠자리가 편하니 다음 날 일정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오히려 집에서 잘 때보다 더 편하게 잤다고 말한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곳으로 이사와서 살까 이야기한다.




가을 지리산에서 행복하고 따뜻하게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이 밝았다. 숙면을 취해서 개운했다. 평소라면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특별히 살 게 없어도 바람 쐴 겸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차를 타고 나가는 순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트에 갔다오는 시간조차 아껴서 가을 지리산을 눈에 담기 위해 전날 넉넉하게 장을 보고 왔다. 대신 아이들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 갔다. 이곳에 오면 늘 가는 곳이다. 펜션에서 약 400m 떨어져 있다. 아이들도 충분히 걸어서 갔다올 수 있는 거리다. 이쁘게 물든 단풍과 선선한 가을 바람을 즐기며 아이들과 천천히 카페까지 걸어갔다. 전날보다 날씨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카페에 도착해서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아내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지리산 라떼를 주문했다. 지리산 라떼는 국산 어린쑥으로 만든 쑥라떼다. 전혀 씁쓸하지 않고 라떼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에 쑥의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름 그대로 지리산을 맛보는 느낌이다. 아메리카노도 탄맛이 나지 않고 원두의 고소함과 약간의 산미가 알맞게 느껴져서 맛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브라우니를 주문했다. 진하고 꾸덕한 브라우니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져서 달콤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잡는다.


커피와 디저트도 맛있지만, 이곳의 매력은 인테리어와 분위기다. 카페 공간은 너무 넓지 않고 아늑하다. 아늑한 공간에 유럽풍의 인테리어가 과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포인트가 된다. 조명과 창문 틀에도 사장님의 취향이 돋보인다. 11년 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들어간 카페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럽의 카페는 이런 느낌이구나' 했던 곳이었는데, 이 카페에 올 때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무엇보다 여기에 놓여져있는 책들이 나의 취향과 같다. 여름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서, 커피만 사고 바로 나오는 바람에 책 제목들까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카페에 머물며 찬찬히 살펴봤다. 대부분 우리집에 있는 책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익숙한 제목의 책들을 몇 권 꺼내서 읽었다. 은은한 커피 향을 즐기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내는 아내대로 카페의 분위기를 즐기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재미있게 노는 그 시간이 나에겐 힐링이었다. 이곳에 여기에 있는 책들을 읽기 위해서 오지는 않겠지만, 나의 취향에 맞는 요소를 이번에 하나 더 발견해서 더욱 애착이 간다. 여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름은 여름대로 활기가 느껴져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한적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햇볕은 따뜻하면서 바람은 선선한 날씨도 알맞다. 잠자리도 편한 숙소에, 취향을 저격하는 카페에,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지리산이다. 그리고 가을 지리산의 마지막 저녁을 장식하기 위해, 특별 메뉴로 부산에서 준비해서 가져 온 장어도 기대된다.


20251115_110926.jpg 우리가 주문한 메뉴.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내 취향에 딱 맞다.
20251115_114704.jpg 우리집 책장을 옮겨놓은 듯 익숙한 책들이 많아서 더 반갑고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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