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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모두 즐기고 싶은 곳, 지리산(2)

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by 지우진

예약한 방을 확인하고 차에 있는 짐을 옮겼다. 올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묶었던 방을 제외하고 매번 올 때마다 머물렀던 방이다. 여름휴가 때는 기간도 길었고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함께 지내셨어야 해서 이 방보다 큰 곳으로 예약했었다. 그때를 제외하면, 항상 이 방에서 머물렀다. 층고가 높고, 그만큼 거실에 있는 창문도 커서 지리산을 눈에 담기가 좋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탁 트이고 삼림욕을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묶었던 방이라 애착도 가서 지리산 여행을 계획하기 전 이 방이 비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한다. 비어 있으면 안심하고 그제서야 일정을 맞춘다.


짐은 하나로마트에서 장 본 것부터 정리했다. 낮기온이 14도였지만 산속이었고 우리가 오후 3시 언저리에 도착해서 덥지 않고 쌀랑했다. 그래도 신선식품부터 정리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먼저 차에서 꺼냈다. 주류는 좀 더 시원해지도록 냉동실에 잠시 넣어놨고, 고기와 야채, 생수, 우유, 계란은 냉장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놀거리들을 옮겼다. 그래야 우리가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고 있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양념장들이 담긴 가방과 편하게 갈아 신을 신발들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옷가방을 옮겼다. 지리산에 머무는 동안 기온이 아침 저녁으로는 1도에서 3도 사이였고, 낮에는 최고 16도까지 올라간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부산보다 일교차가 크고 아침과 저녁은 겨울 날씨여서 옷을 종류별로 챙겨서 갔다. 독감도 유행하고 있어서 혹여 감기에 걸리면 안되기 때문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 32인치 캐리어 하나와 더플백 하나를 가득 채웠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는 나를 보고 아내는 헛웃음을 쳤다. 같이 챙겨서 왔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다. 과하다고 보여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는 낫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몇 개라도 챙겨서 올 수 있다.


짐정리를 끝내고 아내는 딸과 함께 단풍을 보러 계곡 주변으로 산책을 갔고, 나는 아들과 마당에서 캐치볼을 했다. 요즘 야구에 푹 빠져있는 아들은 지리산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제일 먼저 글러브와 공을 챙겼다. 다른 사람들 없으면 하자고 얘기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거의 한 시간가량 할 수 있었다. 멀리는 단풍에 물든 산이 있고 가까이엔 영근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배경 삼아 아들과 한 캐치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코끝이 빨개진 아들이 마무리 훈련을 하러 온 선수들 같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삼성 라이온즈 유튜브에서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영상을 봤나보다.



캐치볼이 마무리될 때쯤 사장님네 부부께서 오셨다. 우리가 펜션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아내를 통해 미리 받으셨지만, 볼일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이제서야 왔다고 하셨다. 아내가 바베큐 얘기를 했는지 숯불을 준비해주러 잠시 왔다며, 다시 또 나가야 한다고 미안해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편하게 볼일 보고 오시라고 했다. 자주 와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도 덧붙였다. 사장님께서는 숯불을 준비해서 우리 방 앞으로 가져다주시고 다시 나가셨다. 그동안 아내는 마트에 샀던 지리산흑돼지와 야채를 준비해서 야외 테이블에 준비했다. 아이들에게는 따뜻하도록 패딩을 입혔다. 날이 추워졌을 때 밖에서 하는 바베큐는 처음이라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여름에 왔을 때 열심히 고기를 구워봤던 아들은 이번에도 본인이 나서서 직접 장갑을 끼고 고기를 올렸다. 아직 9살이지만 고기의 간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 아들이 구운 흑돼지를 맛있게 먹고 닭다리살도 구웠다. 일류 야끼토리집에서 먹는 맛이었다.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사장님네 부부께서 볼일을 끝내고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슬쩍 오시고는, 이제 해도 떨어져서 더 추워질텐데 밑에 바베큐장에서 같이 먹자고 하셨다. 우리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베큐장으로 갔다. 이곳은 마당이 있는 곳에 공용 바베큐장이 있고, 마당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펜션 건물이 있는 구조다. 우리 방을 기준으로 볼 때 공용 바베큐장은 계단 밑에 있다.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챙겨서 내려갔다. 사장님께서는 벌써 숯불을 피우셨다. 하지만 내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시선이 머무른 곳은 테이블 중앙에 놓여져 있는 신선한 육사시미와 사장님께서 산에서 직접 캐오신 자연산 송이버섯이었다. 사장님은 산에 직접 가셔서 송이버섯을 포함해 다양한 버섯을 따신다. 본인만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하셨다. 손수 관리하시는 고로쇠나무도 여러 그루가 있다. 작년부터 이곳에 오면서 사장님네 부부와 친해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들은 사실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 산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등산을 좋아하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진짜" 산을 좋아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은 결코 모르는, 이 길로 사람이 갈 수 있나 싶은 길로만 다니신다고 하셨다. 그래야 크고 좋은 버섯이 많다고 알려주셨다. 이 송이버섯은 며칠 전에 산에 올라가서 따온 거라고 하셨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다. 향과 맛이 듣던 대로 훌륭했다. 먹으면서 곧바로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그 특유의 향 때문에 버섯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자연산 송이버섯은 달랐다. 맛있게 잘먹는 나와 아내를 보시며 사장님께서는, 우리가 오면 주려고 아껴둔 거라고 덧붙이셨다. 사장님네 부부의 정(情)에 다시 한 번 마음이 따뜻해졌다. 매번 잘 챙겨주셔서 이번에 올 때 사장님네를 위해 겨울옷과 모자 그리고 가방을 선물로 준비했는데, 준비해서 오길 정말 잘했다. "지리산"이라는 장소도 매력적이지만, 이곳에 계시는 사장님네 덕분에 그 매력이 배가 된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고 함께 먹는 음식이 훌륭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지리산의 첫날은 아름답고 따뜻하게 저물어갔다.



20251114_193536.jpg 신선한 육사시미와 사장님께서 직접 딴 자연산 송이버섯. 그리고 사장님의 특제 소스. 최고의 한상이다.
20251119_지리산에서 아들과 캐치볼.jpg 지리산에서 아들과 캐치볼. 아들 뒤로 보이는 곳이 바베큐장이고, 그 뒤에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20251114_165810.jpg 바베큐장 뒤에 있는 감나무. 단풍과 더불어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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