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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모두 즐기고 싶은 곳, 지리산(1)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by 지우진

지난 글 "같은 곳을 여행가도 늘 설레는 이유가 있다." 말미에 언급한 대로 나와 아내와 우리 아이들은 11월 14일(금요일)부터 11월 16일(일요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 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아내는 14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의 등원 · 등교를 준비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대신 첫째는 3교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조퇴하기로 했고, 둘째는 유치원에서 오전 활동이 끝날 때쯤 데리러 가기로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전날 챙겨 놓았던 짐들을 한 번 더 점검했다. 여름에는 물놀이 도구들이 많아서 챙겨야 할 짐이 상당했었다. 짐을 차에 싣기까지 몇번을 왔다 갔다 했다. 이번에는 옷이랑 먹을거리만 챙기면 되니 여름에 갈 때보다 수월하겠다 싶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리산의 일교차가 커서 아이들이 감기 걸리지 않게 옷을 종류별로 넉넉하게 준비하고, 아이들이 꼭 가져 가야 한다고 부탁한 놀거리들을 챙기다 보니 어느새 또 한 아름이 넘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혹시 모를 여러 상황들을 최대한 예상해보고 준비한다. "최소한으로 가볍게 챙기고 나머지는 부딪치면서 해결해보자" 가 잘 안 된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아, 이것도 챙겨올걸" 하며 아쉬워하는 일이 가능한 생기지 않도록 여유있게 준비하자는 주의다. 그래서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린다. 그러한 아쉬움도 여행의 일부라고 여기는 데에 물론 동의하지만, 준비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것과 실수로 깜빡한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항상 완벽하게 모든 걸 준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준비하려고 애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함께 가면서부터는 더 그렇다. 여행을 가면 집과 다르기 때문에 불편한 부분은 있을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늘 설명을 해주고 아이들도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해주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할 수 있게 충분히 준비하려고 한다. 다행히 아내도 나와 비슷해서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진다. 서로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메꿔줘서 수월하다.




모든 짐을 차에 싣고, 3교시 마치고 조퇴하는 첫째를 마중 나간 다음 둘째를 데리러 갔다. 금요일이어도 평일 12시 이전에 고속도로를 타서 그런지 차가 많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출발하면 제일 먼저 남해고속도로를 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첫번째 휴게소로 진영휴게소를 맞이한다. 남해고속도로를 타면 언제나 가는 휴게소이다. 항상 들르는 곳이어서 아이들도 익숙하다. 여기 돈까스를 아이들이 잘 먹는다. 나는 '뼈없는 순살 우거지해장국'을, 아내는 '할매잔치국수'를 먹었다. 잔치국수는 간이 슴슴하면서 담백했고, 우거지해장국은 적당히 칼칼하면서 시원했다. 아이들도 돈까스를 각자 한 그릇씩 뚝딱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휴게소하면 빠질 수 없는 호두과자도 하나 산 다음,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2시간 30분을 달려서 지리산 IC로 빠졌다. 산청군을 지나면서부터 주변에 보이는 산세가 서서히 달라지지만, 지리산 IC로 나와서 딱 마주하는 산의 모습은 언제봐도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단풍이 알맞게 물들어서 여름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줬다. 아내와 아이들은 창문을 내리고 산내음을 만끽했다. 부산과 다른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지리산 IC에서 펜션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IC에서 나와서 펜션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하나로마트가 있다. 이곳에서 생수와 주류, 과자, 라면을 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고기도 구매했다. 처음 지리산을 갈 때에는 고기도 미리 준비해서 갔다. 하지만 부족한 게 있어서 우연히 들른 여기서 구매한 지리산흑돼지를 구워 먹은 다음부터는 고기는 무조건 이곳에서 사서 간다. 그게 더 신선하기도 할뿐더러 지리산에서는 역시 지리산흑돼지를 먹어야 한다.


마트를 나와서 5분 정도 가면 "이곳이 마지막 주유소입니다." 라는 표지판이 걸린 주유소를 지나게 된다. 곧이어 길도 구불구불해지며 지리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도로 옆에 흐르는 계곡물이 여름보다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단풍은 정말 풍성하고 이쁘게 물들었다. 갓길에 정차하고 사진을 찍는 분들도 제법 있었다. 아직 펜션에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아내는 지리산의 단풍을 본 순간부터 벌써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단풍나무들 사이로 20분여간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며 들어간 끝에 펜션에 도착했다. 작년부터 몇 번이나 방문해서 이제는 친척집에 온 듯 익숙하고 편안하다. 사장님네 부부와도 어느덧 친해져서 사촌형님과 형수님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도착한 날에는 예약이 우리가족 포함 두 집만 있었다. 다음날인 주말에는 예약이 거의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도착했을 때 마침 아무도 없어서 여름에 왔을 때보다 한적했다. 여행지가 아니라 아지트에 온 기분이었다. 펜션을 둘러싼 지리산의 풍경은 여름과 또 다르게 아름다웠다. 여름에만 왔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광경이었다. 매일 이 경관을 보고 싶다. 지리산으로 여행 오길 잘했다. 아직 짐도 풀지 않았지만 벌써 지리산의 가을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펜션에서 바라본 지리산. 사진보다 산세가 더 웅장한데 담지 못해 아쉽다.
빨갛고 곱게 물들은 단풍. 지리산의 가을은 여름과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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